대만의 감수성이 의외로 우리와 통한다는 걸 알게 된 건 청핀서점에 꽂힌 책들을 보면서였다. 청핀서점은 우리로 치면 교보문고 같은 곳이다. 대만을 대표하는 서점이며, 지역마다 색다르게 구성되기도 하고 대만의 유행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그런 서점이다. 거기에 펼쳐진 책들, 그 책들이 지향하는 취향이나 정서가 우리와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타이베이를 구경할 때도 우리나라의 오래된 거리를 걷고 있나 싶게 친숙한 느낌이었다. 대만의 유행도 레트로가 큰 축을 구성한다. 옛 거리를 멋지게 리모델링하여 젊은 층을 매료하고 있으며 지나간 시대의 낭만이 새로운 상품이 되었다.
이런 곳 중에서 우리 감수성과 가장 통할만한 동네를 들라면 디화지에(迪化街)다. 디화지에가 있는 다다오청이라는 지역은 대략 200년 전쯤, 해상 수운을 바탕으로 타이베이가 대만의 가장 큰 도시로 일약 성장하게 되었을 때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된 지역이다. 단수이강을 따라 해외 상선들이 통과하던 무역항이었고, 부유한 상인들과 갖가지 목적으로 들어온 외국인들의 거주지였다.
대만 최초의 서양식 음식점, 호텔, 클럽도 다다오청에 가장 먼저 생겼다. 서양식 문화나 새로운 유행은 물론 새로운 건축도, 새로운 지식 문화도 다다오청에서 발현되었다. 대만의 역사적 분기점이 된 혁명적 사건들도 바로 이곳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혁명의 거리는 지금 ‘타이베이의 부엌’으로 불린다. 디화지에는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랫동안 차(茶) 무역을 했다는 ‘임화태차행’을 비롯해서 먹거리부터 한약재까지 각종 생활 상점들이 펼쳐진다.
값비싼 어란을 대량으로 파는 상점이며, 간식을 파는 노점이나 한 끼 해결하기에 좋은 맛집들도 가득하다. 요즘은 낡은 모던시대의 건축물을 개조하여 로컬 브랜드 상품으로 채운 핫플들도 자리 잡고 있어 거닐기도 좋고 즐길 것도 많은 동네가 되었다.
디화지에를 거니는 것은 모던시대로 시간 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 건축만 보아도 모던시대다. 1층이 아케이드 형식으로 된 삼층 건물이 기본구조이며, 건물마다 다양한 유럽풍 장식으로 치장한 입면이 특징이다. 그중 한 곳에 ‘1920’이라 적힌 붉은색 간판이 달린 공간이 있었는데, 타이완의 모던타임스를 집중 조명하는 동네서점이었다.
쑨원, 발터 그로피우스 같은 1920년대를 대표하는 인물의 초상화가 벽에 걸려 있고, 문화혁명기에 숙청당할 위기에 처해 대만으로 도망 온 지식인 분위기를 풍기는 주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책을 계산대로 가져가면 약간 서투르게 담아주는 몸짓도 어쩐지 옛날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1920서점’을 구경하고 나서 ‘ASW 티룸’에서 홍차 한잔 즐기면 좋다. 그 옛날 다다오청에 영국풍 찻집이 있었다면 바로 이곳 같지 않았을까? 대만의 레트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갤러리 겸 숍 ‘민예청’도 구경할만하다.
그러나 가장 추천하고픈 장소는 내가 머물렀던 호텔 ‘오릭인 스페이스(OrigInn Space)’다. 오릭인은 주인의 취향이 묻어나는 감각적인 빈티지 소장품들이 가득한 부티크 호텔인데, 옛날 집의 구조를 그대로 체험할 수 있었다.
‘도기다시’라 부르는 인조석 물갈기방식이 계단, 바닥, 목욕탕 등 건물 곳곳에 사용되어 있기에 왠지 그리운 옛 장소를 만난 것만 같았다. 층고가 높고 창문이 긴 방에는 빈티지 가구들이 자리하고 있다.
오릭인에서 며칠 머무르는 동안 호텔 주인이 추천해준 음악을 들었다. 스탄 게츠와 아스트리드 지우베르토가 노래하는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가 울려 퍼지는 오래된 아파트는 꽤 낭만적이었다. 보사노바의 맑고 밝은 음이 온통 낡음으로 가득한 타이베이와 썩 잘 어울렸다. 타이베이에서는 보사노바를! 노래 제목을 ‘타이베이에서 온 소녀’라 해도 될 것 같았다.
타이베이에서 온 소녀라 하면 단연 등려군이다. <월량대표아적심(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으로 아시아의 별로 추앙받던 가수 등려군. 대만 노래가 듣고 싶다는 우리에게 호텔 주인은 등려군의 앨범을 여러 개 들려주었다. 그중에는 대만의 전통 언어인 민남어로 부르는 노래도 있었다.
민남어는, 중국 본토에서 국민당 정부 하의 사람들이 대만섬으로 이주하여 정권을 잡으며 북경어를 공식 언어로 선포하기 전까지 통용되던 언어다. 과거 청나라 시절 복건성에서 이주한 중국인들, 그리고 여러 소수 원주민들이 민남어로 말했다.
대만을 여행하다 보면 활달하고 명랑한 민남어를 은근 자주 듣게 된다. 북경어든 민남어든 뜻을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언어의 뉘앙스가 확실히 다르다는 건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이주한 본토인들은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거란 생각으로 대만을 지배했고, 본토를 향한 그리움으로 대만을 과거의 시간 속에 멈춰 있게 했다. 대만의 관공서가 모두 일본 지배기의 건축물인 이유도, 대만 전역에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그대로 사용되는 이유도 언젠가 돌아갈 거란 믿음 때문에 도시를 개선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고 80년이 지난 지금의 타이베이는 돌아갈 명분이나 이유가 전혀 없는 새로운 세대들이 과거의 그림자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타이베이는 밝고 유쾌하며 즐길거리가 많은 곳이다. 그러나 이면의 그림자, 역사의 쓸쓸함을 감지하는 순간, 이 도시는 단순한 관광지에서 그 층이 복잡한 어떤 장소가 된다. 그 점이 느리고 낮은 음률과 멜랑콜리가 담긴 보사노바와 묘하게 통했는지도 모른다. 그 오래된 호텔의 천장 높은 방에 울려 퍼지던 보사노바, 그것은 타이베이의 서늘한 시간이었다.
글 ·사진 최예선(아트 칼럼니스트)
샘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