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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Weekly Korea EDIT

가톨릭과 술은 무슨 관계?


독자들은 자주 나오는“가톨릭과 ㅇㅇ”라는 주제에 익숙할 것이다. 예수회 사제로 저술가인 펠릭스 신부가 말했듯,“한 측면과 그 반대편은 서로 긴장 관계에 있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래야만 하는데, 설사 그 둘이 서로 모순되어 보이더라도, 진실 전체를, 복잡한 현실의 전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런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이고 동시에 인간이었다. 인간은 몸을 갖고 있지만 영혼도 갖고 있다. 우리는 신앙으로써, 그리고 행위로써 구원받는다. 로버트 배런 주교의 책 제목이기도 한 이러한“진동하는 역설들”(vibrant paradoxes)은 가톨릭 사상의 한 특질이다. 어느 날 저녁 내 앞 책상 위에는 그러한 또 하나의 전형이 놓여 있었다. 신학적으로는 그다지 수준 높은“둘 다/이면서”(both/and)는 아니었지만. 그것은 가톨릭 신앙과 술의 관계였다.


나는 한 수도원에서 짧은 피정을 하고 있었는데, 한 순간, 미소를 지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식사를 담은 그릇 옆에는 시메이 골드가 한 병씩 놓여 있었다. 이 수도원에서 만드는 네 가지 맥주 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많은 트라피스트회 수도원과 마찬가지로, 벨기에의 스크루몽 수도원에서는 수도원 안에 양조장을 운영하여 수익을 얻고 있다. 엄률 시토회는 카리스마에 환대가 포함되는데, 따라서 인간 손으로 만든 이 산물을 손님들에게 나누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다.


술은, 진짜 완전히, 가톨릭 체험의 중심에 있다. 성체성사는 빵과 포도주로 시작한다. 동시에, 취하게 하는 물질들과 연관해 어떤 위험들이 있는지도 잘 기록돼 있다. 20세기 초에 미국인들은 알콜의 결과를 너무 무서워해서 1920-33년에는 술 생산과 판매를 금지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미국에서 해마다 8만 8000명이 술 관련 질병으로 죽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0-64살 사이 미국인의 1/10이 과음이 원인이 되어 죽는다. 그리고 과음하면 우리 인간이 하등 생물과 구분되는 가장 뚜렷한 이유인 이성이 마비되므로, 그 문제점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신학대전”에서 술에 취하는 것은 단지 작은 죄에 그치지 않는 대죄라고 썼고, 사도법전에서는“음주나 도박에 빠진 자는.... 그것을 포기해야만 하며 그러지 아니하면 파문된다”라고 규정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다.


그렇지만 기록상 예수님의 첫 기적은, 성모님의 재촉에 따라, 물을 뭔가 좀 독한 것으로 바꾼 일이었다. 오늘날,“당신이 알아야 할 가톨릭”이라는 팟캐스트에서는 콜로라도에 있는 사제 4명이 나와서 역사, 전례, 교리 등 다양한 주제를 토론하는데, 거의 언제나 메이커스 마크 버번위스키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한편, 미국의 여러 교구에서는 청년을 겨냥한 종교 관련 강연회를 바에서 열고 있다.“신학 한 잔”이라는 기치를 걸고 말이다.


증류주인 샤르트루즈는 18세기에 카르투시오 수도회원들이 완성시켰는데, 이 수도회는 가톨릭교회의 여러 수도회 중에서 가장 엄격한 수도회로 널리 인정된다. 이 술은 원래는 의료용으로 만들어졌지만, 사람들은 곧바로 이 술을 즐기는 데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카르투시오회 수사들은 멈칫하기는커녕 아예 (조금) 도수가 낮은 녹황색 술들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요즘은 고급 칵테일에 쓰인다.


베일러 대학 교부학 부교수인 마이클 폴리는“성인들과 함께 마시기.죄인들을 위한 성스러운 행복 시간으로의 안내서”를 쓴 바 있다. 그는“나는 수사들은 술이 본질상 좋은 물건이라고 이해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이 말은, 술이 오용될 수 없는 물건이라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술은 책임 있게 마신다면, 특히 가톨릭적 윤리의 틀 안에서일 때는, 친교나 한 끼의 즐거운 식사와 같은 많은 미덕이 더 풍요로워진다”


“좋기도 하고 또한 오용될 수도 있다”는 낯익은 공식이 또다시 작동한다. 앞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뒷 부분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대죄를 저지를 위험이 있다. 하지만 밤늦게까지 한 병 독한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멋진 시간을 보내 본 이라면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이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천국에 가까운 때일 수 있음을 이해한다.


인간이 세세대대로 앞으로 다가올 이“천상 잔치”를 기대해 온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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