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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Weekly Korea EDIT

[조기조의 세상속으로] 홍합 우려먹기

손님이 북적이는 한 중국집은 얼큰한 짬뽕을 시키면 홍합을 껍데기 채 수북이 얹어 준다. 알을 까서 넣었다면 별로 표가 안 날 것이 인심 좋고 넉넉해 보여 사람들이 찾아들게 하는 것이다. 알이라 해야 생기다 만 것 같은 것이 들어 있다. 어쨌거나 껍데기만 따로 모아도 한 그릇이다. 아마 작아서 상품이 안 되는 것을 양식장에서 가져와 냉동 창고에 저장해 두고 1년 내내 내어놓는 것 같다.

10월 하순의 상강(霜降)이 지나고 11월초면 입동(立冬)이다. 겨울이 든다. 몸도 마음도 추운 날에 포장마차에서 시원하고 얼큰한 홍합국물을 마시는 on-tact가 기다려진다. 그러나 올 겨울엔 어려울 것 같다. 홍합을 사다가 매운 고추를 넣고 끓이면 뿌연 국물이 매콤하게 우러나오고 껍질이 벌어져 홍합 살을 먹을 수 있다. 속살이 붉다고 해서 홍합인데 열합이나 합자, 섭, 각채로 부르기도 한다. 특별히, 삶아서 말린 것을 담채(淡菜)라 하는데 보관이 쉬워 국에 넣거나 밥할 때 넣어 먹기도 한다. 마른 멸치처럼 그냥 먹어도 주전부리가 된다.

바다에 자라는 자연산 어미 홍합이 산란을 하면 많은 유생들이 떠다닌다. 이것들을 양식장에서 정착시켜 관리하는데 정작, 서너 달이면 다 자란단다. 홍합은 4~5월에 입식하면 10월 말이나 11월부터 수확하는데 바닷물에 플랑크톤 같은 영양이 많아야 부쩍 자란다.


홍합이 하루에 플랑크톤을 빨아들이고 물을 내뿜는 횟수가 몇 만 번은 족히 되도록 연신 먹이활동을 하는 것 같다. 암수가 구분되는데 암놈이 보다 흰색이고 산란 전후에는 맛이 없으니 붉은 색을 띄는 수놈이 인기다. A자로 시작하는 달 사이에는 독이 있어 먹지 말라하니 4월(April)부터 8월(August)까지이다.

놀라운 것은 딱딱한 껍데기를 스스로 늘여가며 홍합이 큰다는 점이다. 그 껍데기를 만드는데 영양과 에너지가 많이 든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가 먹는 홍합 살은 빈약하고 초라해 보인다. 홍합을 까고 남는 껍데기는 골칫거리다. 부드러운 굴 껍데기는 사료나 퇴비로 쓰지만 딱딱하고 단단한 홍합의 껍데기는 쓰레기로 파묻는다. 처리에 돈이 드니 활용방안을 찾으면 좋겠다.

홍합은 껍데기가 바위나 양식장의 줄에 붙어 자라는데 가는 털실 같은 족사(足絲, Byssus)가 나와 단단히 붙게 된다. 떼어내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접착력이 있다. 이 족사를 사람들은 심지라고 부른다. 이 족사를 만드는 성분을 추출해 혈액 내에서도 안정적으로 뼈를 고정하는 접합제를 만들기도 한다니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지혜가 놀랍다. 최근에 국내에서 홍합이 내는 강력한 접착 단백질과 바다 갯지렁이가 단백질과 바닷물만으로 견고한 모래집을 만드는 원리를 보고 이들을 결합해 새로운 뼈 접합제 생산에 성공했다는 낭보가 있다.


홍합의 접착 단백질성분이 뼈 입자 사이에서 외부 충격에 대한 완충 역할을 하면서 기존 접합제보다 압축강도가 몇 배나 높고 혈액에 대한 내수성 또한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민어의 부레는 아교질이 많아 접착제로 널리 쓰여 왔다. 소위 ‘부레풀’이다. 옷에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는 도깨비바늘을 보고 ‘찍찍이’를 개발한 것처럼 자연의 생물을 보고 배울 것은 많다.


영어로 Sea silk라는 말이 있으니 족사로 실을 엮어 옷감을 만들었던 모양이다. ‘임금님의 날개옷’처럼 본적은 없으나 고급이라 한다. 귀하니 그럴 것이다. 양식장에서 큰 씨줄을 치고 거기에 날줄을 줄줄이 매달아 바다 속으로 내리는데 홍합은 날줄에 붙어산다. 오래 전에는 폐타이어를 썰어 날줄로 썼지만 안 그런지 오래니 걱정할 것은 없다. 따로 먹이를 주지는 않지만 날줄의 홍합에 붙는 오만둥이나 청각, 파래 같은 것들을 제거하는 일이 성가시다.


올해는 지속된 장마로 민물이 계속 밀려들어 염분 농도가 낮아 절반 넘게 폐사했다고 한다. 거저 되는 일은 없나보다. 한여름에 바닷물 온도가 높아 적조가 발생하면 또 그 독소로 폐사하기도 한다. 생산량이 60% 정도 줄었으나 다행이도 가격은 약간 올랐다하니 그나마 본전이라도 건지면 좋겠다.

최재천 교수는 학자들이 전공의 울타리 안에 갇혀 사는 것이 옳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려고 영어의 ‘consilience’를 ‘통섭(通攝)’이라 번역했단다. 통섭은 기존의 학제간(inter-disciplinary) 연구보다 그 영역을 확장한 것으로 서로 다른 학문의 개념과 방법론들을 녹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범학문적 연구(trans-disciplinary study)를 말한다.


속 풀이로 홍합 짬뽕국물을 마시다가 통섭을 생각하며 낙서 겸 메모를 해 본다. 생물학적 이야기에 사회·인문학적 스토리를 엮으면 좋겠다 싶어서다. 또 홍합으로 무엇을 더 찾아내고 어떻게 엮을 지도 흥미롭다.


조기조(曺基祚 Kijo Cho), 경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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