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연휴에 잠시 일본을 다녀왔다. 우선은 가까워서 좋았고 한겨울에 너무 더운 곳을 찾고 싶지 않아서 이기도 했다. 일본은 차분하고 안정되어 있다. 치안이 잘 유지되고 환경이 깔끔하고 사람들은 친절하다.
상품은 믿을 수 있고 관광에는 바가지가 없다. 조용하게 쉬기에는 참 좋다는 생각이다. 한·일간에 문화도 경제도 관계가 나쁘지 않다. 아쉬운 것이 과거사 문제다. 한·중·일 3국은 깊은 관계에 있다.
지정학적으로 이웃하였기에 불가분의 관계다. 이리보고 저리 보아도 일본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많이 시달린 나라가 한국이다. 구체적인 역사를 돌이켜보면 치가 떨리고 이가 갈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제는 내 탓에서 찾아야 한다.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고 쇄국(鎖國)했기에 일어난 일이다. 개방을 하지 않고 기술을 중시하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다.
1392년에 조선이 개국하였고 딱 200년 만인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이어서 정유재란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굴욕을 당했던가? 그로부터 또 302년 만인 1894년에 발발한 청일전쟁, 중국(청나라)과 일본이 우리 땅, 우리 바다에서 싸웠는데 직접적인 원인은 동학 농민 봉기 때문이었다. 전쟁에서 이긴 일본에게 결국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했다.
한일합방이라면 더 잘 알 것이다. 만주를 복속(服屬)시키고 청나라를 유린한 일본이 기고만장한 것은 개방정책으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고 무기개발에 앞장섰기 때문인 것이다. 오늘날 말하는 기술개발이 바로 그것이다. 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 창씨개명을 하였고 지카타비나 게다를 신고 다니며 스미마셍을 입에 달고 다닐 것이다. 자주독립을 하지 못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 청나라 말기는 부정부패에 빠져있었고 영국의 동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영국은 러시아의 남진을 견제하기 위하여 우리나라의 거문도에도 무단 점유하여 몇 년을 있었다. 부패한 청나라는 청일 전쟁에서 지게 된 것이고 우리의 경술국치처럼 비슷한 시기에 신해혁명이 일어난다.
청나라는 사실상 망한 것이다. 그 이후로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고 국민당과 공산당이 힘을 합치는 국공합작을 하여 일본의 침입에 대항하였다. 2차세계대전후 대약진운동을 일으키며 홍위병들이 설쳐댔고 천지개벽을 할 것 같았던 문화대혁명은 성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내홍으로 범벅이 되었다.
우리에게 천만 다행인 것은 중국이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소련과의 국경분쟁에 패하여 동해 연안을 빼앗겼다는 것이고 죽의 장막을 치고 암흑기에 들어서는 동안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집권은 했지만 경제발전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지난 천 년여 역사를 두고 중국에 앞선 때가 지금까지의 50년 정도일 것이다.
동해가까이 두만강 하류, 중국의 방천지구에는 조·중·러 3국 국경이 있다. 동해안까지 20~30km나 될까? 북한의 나진 선봉지구에서 북으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길이 있다. 동해 연안을 따라 가늘고 길쭉한 땅이 러시아 땅인 것이다. 이로서 중국은 동해가 없다. 어항, 군항, 어장도 없고 200해리 대양이 없으니 중국으로서는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요즈음으로 돌아와 보자.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가졌고 미국 본토까지 날아갈 미사일을 개발했다. 그동안 어린애가 아니라면 북한이 어떤 어려움에서도 죽기 살기로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라는 점을 알았을 것이다. 몰랐다면 ‘10만 양병설’을 팽개친 것이나 다름없는 실책이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은 북한을 입술로 삼는다. 남한에 있는 미군과 압록강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기에 남북통일을 원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방해하며 북한을 가마오지로 목줄을 쥐고 있는 것이다. 통일된 강한 한국을 누가 원하겠는가?
2차 대전 후 미국은 지도를 놓고 ‘애치슨 라인’을 그었다. 이것이 미국의 극동 방위선이다. 소련과 중국의 영토적 야욕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은 극동 방위선을 캄차카 반도와 알래스카 사이에 있는 알류샨 열도 – 일본 – 오키나와 – 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을 그은 것이다.
한반도와 대만, 인도차이나 반도는 제외되었다. 이 때문에 김일성이 쉽게 소련을 설득하여 6·25전쟁을 일으키고 중공군을 끌어들이게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제 중국이 많이 컸다. 미국으로서도 버거운 상대다. 미국은 팽창을 하는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면서 그럴 일이 있겠나 하는 생각은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일본은 러시아와 북방 4개 섬 문제로 갈등이 있다. 쿠릴 열도 분쟁이다. 그러다보니 북핵과 중국, 러시아의 위험에 대해 한·미·일·대만과 호주, 또 인도 등이 단합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동남아 국가들도 중국에 시달린 과거가 있다. 남지나 바다를 독식하려고 인공섬까지 만든 것을 보면 근해의 국가들은 어찌 하란 말인가? 영토, 영해를 욕심내면 빼앗기는 나라는 또 어쩌란 말인가.
한 주먹 쥐는 것은 쉽고 안 움큼 쥐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한아름을 안고 가려면 팔이 빠진다. 욕심은 화를 자초한다. 자유와 민주, 정의와 공존, 민복을 위하는 나라는 순천자(順天者)다. 과거사를 언제까지 풀지 못하고 갈 것인가?
한국과 일본이 앞으로 선린(善隣)이 되려면 지나간 잘못을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이 도리다. 일본이 그리 하리라고 믿는다. 감추려는 것이 문제지 사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바른 길로 가자. 우에노 공원에는 조생 사꾸라가 피었다. 진해에는 이어 벚꽃이 만발할 것이다. 한·일의 상춘(賞春)을 기대한다.
조기조(曺基祚 Kijo Cho), 경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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