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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Weekly Korea EDIT

[조기조의 세상속으로] 청첩 고지서?


2014년의 영화 <국제 시장>에는 할아버지인 주인공이 40여 년 전에 결혼하던 장면이 나온다. 지금도 건재한 마산의 ‘신신예식장’이다.


그때 그 시절을 떠 올리게 하는 그 예식장은 여전히 촌티가 줄줄 나지만 그래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뒤늦게라도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사진을 찍어 소원을 푸는 곳이다.

예식장의 백낙삼(91) 대표는 주례이자 사진사이고 또 인생 상담을 해 왔다. 예식장은 이들 부부가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즐겁게 일하고 베푸는 곳이다. 웨딩드레스 한 번 입어보지 못하고 청춘이 다 간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는 일을 한다.


작년에 큰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시라는 이 어른은 작고 마르고 다부진데다 이런 좋은 일을 하시니 건강하게 100수를 누리실거다. 마산 3•15 기념탑과 ‘몽고정’이 있는 추산동 길에서 100미터의 거리에 있는 곳이다.

결혼을 하거나 자녀 결혼을 시키는 부모입장에서 하객이 별로 없을 것 같으면 걱정이 될 것이다. 그동안 축의를 소홀히 한 사람은 후회가 막심할 것이고. 축의금이 많이 들어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하객들에게 축의금을 받지 않고 고급 식사를 대접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식중에 악단을 준비해 연주를 선물하기도 한다. 좋은 일이다.

일생에 한 번 뿐인 결혼식을 폼 나게 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이벤트를 포함해 예식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다. 결혼식은 형편 따라 하면 되는 일이라서 돈 들여 하는 것을 무어라 할 수는 없지만 나는 검소하게 하고 싶다. 사실, 결혼식 비용조차도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번듯하게 제 집을 장만해서 결혼하는 부부가 몇이나 될까? 변변한 살림살이도 없이 시작해야 하는 사람들은 기쁘고 즐거워야 할 결혼이 무겁고 힘들 것이다. 결혼식을 가족과 친한 친구 중심으로 조촐하게 하면 어떨까? 일생에 한 번이라고 떠들썩하게 해야 할까? 한때 작은 결혼식 이야기가 나돌더니 수그러들었다.

부조금이나 축의금은 품앗이로 전해온 오래된 풍습이다. 어려울 때, 음식이나 돈, 노동력을 주고받는 것이다. 잔치나 행사에 사람이 없으면 안 되니 시간을 내어 찾아보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도 품앗이였다. 상부상조(相扶相助)의 기본이다.

빠듯한 살림에 축의금 낼 일이 많으면 사실, 부담스럽다. 간혹 눈도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깝고 소중한 시간을 낸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어도 정승이 죽으면 썰렁하다는 말이 있다. 이런 걸 두고 우리는 지속가능성이란 말을 쓴다.


이는 ‘지속가능한가?’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 친구와의 관계는 지속가능할까? 서로에게 득이 되는 관계를 생각하고 별 볼 일 없다면 무시하거나 버리는 것이다. 별로 도움이 안 되지만 딱히 버릴 정도가 아니라면 서서히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몇 년간 연락이 없던 친구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오면 반가울까? 반가워했다가 그게 아니었던 경우를 더러 보았을 것이다.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의 ‘연락 없다가 오는 청첩장 대처법’이란 게시물에 많은 댓글이 달렸다.

다들 그런 경험이 있었나 보다. 사람들은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버리지 않는다. 언젠가는 부탁을 할 수 있고 그가 내게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간에도 그렇다. 돈을 빌려줄 때 못 받을까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사람이라면 주저 없이 빌려주겠지만 못 받을 것 같으면 안 빌려 주거나 떼여도 부담이 안 될 만큼만 빌려줄 것이다.


못 받을 줄 알면서도 내 일처럼 나서고 걱정해 주는 관계라면 정말 좋은 친구다. 그런 친구는 하나만 있어도 된다. 축의금에 대해서는 한 때 내가 용렬스러웠나 싶다. 자녀 혼사를 치르고 나서부터 청첩을 받으면 내가 축의를 받았는지 살핀 것이다.

사람들은 어쩌다가 못했을 수 있다. 깜빡하기도 한다. 글을 써도 틀릴 때가 많고 전화를 걸어도 잘 못 걸 때가 있지 않은가?

나도 그런 적이 있으면서 내게 축의를 안 한 사람들에게는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빠뜨린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그렇다고 네가 안 해서 내가 안 한다고 할 수야 없지 않은가. 그런데, 잘 모르거나 친분이 없는 사람에게서 날아오는 청첩장은 뜨악하다.

댓글을 단 사람들은 나이나 경험, 소득 등이 제각기 다르다. 결혼을 못했거나 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결혼 축의금을 내는 것이 아까울 수 있겠다. 내 결혼식에는 모른 체 하다가 청첩을 보낸 사람에게는 그냥 축하한다고 입 발린 인사를 하고 만단다.

이렇게 태연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떤 이는 다음 모임에 축의금을 가지고 간다고 한다. 그때 그 친구가 와서 감사의 표시를 하면 봉투를 전달하고 안 오거나 감사가 없으면 도로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것도 지속가능성을 판단하는 방법이겠다.

천사 같은 마음씨를 보인 한 댓글에 찬반이 갈렸다. “인생 별 것 있습니까? 얼마나 살기 어려웠으면 친구들을 홀대했을까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몇 만원 축의하면 되는 거죠.” 이 댓글에 마음씨 곱다. 여유가 있으시다. 멋져요. 등의 반응이 있는 한편, 얄미워서 못 해요. ‘결혼식이 끝나면 그만일 사람’이라며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다.

세상은 좋은 사람들로도 넘쳐난다. 제 것은 눈을 부릅뜨고 챙기면서 베풀 줄은 모르는 사람들과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있겠나 싶다.

나누고 베푸는 것은 받을 생각을 말고 주면 그만이지만 친구관계란 주고받는 것이니 아니다 싶으면 안 보는 것도 좋겠다. 봄이 오니 꽃소식에다 또 청첩(請牒)이 날아들겠다.


조기조(曺基祚 Kijo Cho), 경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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