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용문이라기에 소림사 12대문을 거쳐야 하는 줄 알았다. 초중고가 12년이니 12대문이기는 하다. 대학 4년에다 대학원까지를 계산하면 한 20년을 다녀야하니 만 원짜리로 쌓아도 등록금이 키보다는 높지 싶다.
그런데 그 과정이 시험의 연속이다. 즐겁게 살아야 하는 인생이 시험지옥이고 학원이나 학교나 모의고사로 시험치는 공부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여러 가지 자격시험 중에 고등고시가 있었다.
지금은 폐지된 사법고시가 고시폐인을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강력하고 고상한 등용문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요즈음은 평생 안정적인 직장을 보장하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매달리는 사람이 많다. 낮추어 보는 것이 아니라 시골 면서기(9급)라도 하늘의 별따기다.
경쟁률이 100대1은 넘는다 하니 50명이 응시하는 고사장 2개에서 딱 한명만 합격한다고 생각해 보라! 기막힌 현실이다.
내가 군에 있을 때 한 법무관이 있었다. 고등고시(사법)를 합격해 법무관으로 군 복무를 하는 사람인데 모든 시험에 한번도 2등을 해 본 적이 없었더란다. 단번에 수석으로 붙으니 그분 보고 한마디 하라시면
“세상에는 시험이 제일 쉬워요!”라고 할 것 같다. 만인의 꿈인 대통령도 시험 쳐서 뽑는다면 그 사람이 응시해 보겠단다. 허허 참.
70년대의 일이다. 나는 자동차가 좋았다. 운전병과 친했다. 운전을 해보고 싶었다. 운전하는 것을 눈 여겨 보았고 몇 가지 질문을 해서 소위 감을 잡았다. 당시의 차는 모두가 수동이었으니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바꾸어야 했다. 속도가 오르고 탄력이 붙어야 다음 기어로 바꿀 수 있었다.
여차하면 시동을 꺼주기도 했다.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가 떨어지면 또 기어를 낮추는 일, 두 발로 감을 잡는 것이 요령이었다. 80년대에 차를 사게 되어 면허증을 따야 했다. 문제집을 사서 틀린 문제만 몇 번을 더 본 뒤 단번에 붙었다. 코스 시험도 쉬웠다.
그런데 시험으로 뽑는다면 대통령도 욕심을 내던 그 어르신이 몇 번을 떨어진 모양이다. 그리 보면 내가 단번에 국가고시(?)에 붙었으니 고등고시도 해 볼걸 그랬나 싶다.
그 후, 미국에 살게 되어 운전면허를 따야했다. DMV(자동차관리과)에서 책자를 구해 단어를 찾아가며 공부하는데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도로교통법이나 운전 방식이 우리와 약간 달라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딴 것이 오히려 불리하다 싶었다.
눈알만 굴려 백미러와 사이드 미러를 보고 운전하는 사람은 운전을 잘해도 실기시험에 떨어진다는 경험담을 들었다. 단번에 붙어 오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갔는데 약간 긴장되었다. 나 혼자 시험을 친다. 한국처럼 특정시간에 많은 사람이 함께 치는 것이 아니었다.
이론시험에 합격을 하니 자동차를 준비해 도로주행시험을 치러 오란다. 날을 잡고 별 걱정 없이 갔다.
코도 키도 큰 경찰관이 차를 둘러보고 각종 등불이 잘 들어오는지 확인을 하고는 출발하잔다.
도로 주행이라면 충분한 운전경력이 있으니 별 걱정을 안했지만 앞 유리에 ‘고개를 돌리자!’하고 한글로 적어놓고 차로를 바꿀 때 깜빡이 세 번 이상을 기다리며 눈알이 아닌 고개를 돌렸다. 후진을 할 때는 오른손으로 오른쪽 조수석을 잡고 고개를 돌려서 보았다.
어색했지만 떨어지지 않는 요령이라니 그렇게 했다. 한 참을 가는데 뭐라고 지시하는 것을 못 알아들었다. 아마 길 옆에 댄 차 사이에 주차해 보라는 말인 것 같았다. 그런 거냐고 되물었다.
그리고는 영어가 서투니 크게, 천천히 말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얄미웠을 것이다. 10분 정도면 되더라는 주행시험을 30분은 넘게 했던 것 같다.
그 시험관이 이만하면 떨어졌으리라 생각했다는 느낌이다. 돌아와서 체크리스트에 감점을 집계한다.
60점 이하면 또 와야 한다. 두세 번을 점검하더니 합격이란다. 이건 뭐지? 딱 60점이다. 100점을 받아 뭐해, 60점이면 되는 것을! 이래봬도 나, 한국과 미국에서 국가고시를 단번에 붙은 사람이다.
수능(대입학력고사)이 끝났다. 국가의 중대사다. 또, 인생의 중대사다. 어떤 시험시간 중에는 비행기도 뜨지 말아야 하고 사이렌도 울리면 안 된다. 다행이도 수능한파는 피했다. 시험이 끝나면 봇물 터지듯 거리로 쏟아지는 학생들 때문에 긴장했던 일도 없다.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예년의 요란스런, 한국적인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후배들의 요란한 응원, 찰떡이나 엿을 붙이는 모습, 교문 앞을 떠나지 못하는 엄마들, 올해는 볼 수 없어 그립다고 해야 하나? 1년에 단 한번뿐인 이 시험은 문제가 많다.
그날의 일진이 인생을 결정짓는 것, 위험한 일이다. 적어도 2번은 응시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미국의 SAT처럼 학생의 사정 따라 원하는 때에 몇 번이라도 치게 하면 안 될까? 우리나라의 기술기반으로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지난 수십 년간의 문제를 모아놓고 그 중에서 임의로 추출하여 시험을 보게 하면 된다. 소위 문제은행에서 출제하는 것이다. 매년 새로 출제하고 출제위원을 오래도록 감금하듯 보안하는 일이나, 문제지를 인쇄하고 운송, 관리하는 것도 엄청나고 위험한 일이다. 이제는 바꾸자.
조기조(曺基祚 Kijo Cho), 경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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