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연말연시를 맞았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며 휴일을 즐긴다. 물심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가족들과 함께 그럴싸한 곳에서 오붓한 분위기를 즐길 것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썰렁하고 허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특별한 사정이라 나돌아 다니지 말고 가능하면 집에 있으라 하니 춥기도 하지만 거리에는 찬바람이 더 차게 느껴진다.
몸이 둘이라도 모자라던, 송년회로 바뀐 망년회 때문에 지치고 힘들었던 게 추억이다. 분위기를 살리는 건배사 하나쯤은 멋들어지게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싶다. 이제 BC와 AC가 예수님 오신 전후가 아니라 ‘Corona 바이러스님 오시기 전후’라는 말에 할 말을 잃는다. 사실 그럴 만큼 큰 변화가 있기는 하다.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휴대폰으로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한다. 참 편리하다. 그런데 이것이 공해다. 무슨 소리냐고? 너도 나도 퍼 나르는, 복사해서 붙여 보내는 이모티콘에 식상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는 발신자의 이름까지 인쇄한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이 성행했었다.
바쁘기는 하겠지만 다른 사람을 시켜 봉투에 담아 보낸 것에다 아무리 보아도 잉크 묻은 글 한자 없는 것에 적잖이 실망했었다. 누구나 그랬지만 받으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단지 그 사람에게서 잊히지 않고 한 장 받았다는 것 밖에 의미가 없다. 간혹, 한지에다 인쇄한 것일지라도 걸어두고 싶은 글이나 그림을 받으면 고맙기는 했다.
이제 그것도 스마트폰의 메시지로 바뀌었다. 언제부턴지 손 편지는 귀한 물건이 되었다. 보기 드무니 영영 사라진 건지도 모르겠다. 나도 보내지 않으면서 남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메시지를 보내면서 망설이고 있다. 시간에 쫓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인정어린 몇 자는 적어 보내면 어떨까?
내려 받은 이모티콘은 안되겠고 내가 손으로 한 말씀 적고 그걸 사진으로 찍어 보낼까싶다. 그것 좋겠다. 나는 문밖을 나서면 눈에 드는 어떤 것들을 사진으로 잘 찍는다. 메모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두었다가 어울리는 것을 좋은 사람들에게 전해준다.
딱히 할 말은 없으나 ‘굿모닝?’ ‘잘 지내는가요?’ 대신에 보낸다. 며칠 전, 앙상한 나뭇가지에 까치 두 마리가 앉아 있기에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다정히 같은 곳을 보던 두 마리중의 한 마리가 돌아앉기에 그 사진을 동지이몽(同枝異夢)이라 적어 보냈다. 또 날아가는 한 마리가 찍혔다. ‘새해에 좋은 소식을 물어다 줄 것입니다!’라며 보냈더니 ‘멋지지 말입니다!’하고 회신이 온다.
누가 ‘행복해지는 지혜로운 생각들’이라며 14가지가 적힌 그림을 보냈다. 읽어보니 그럴싸하고 일리가 있다. 나도 그래야 겠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아는 말이기도 하지만 다시 보니 고맙기도 하다. 마지막 열네 번째에는 ‘보고 싶은 사람은 미루지 말고 전화해서 약속을 잡아 만나라.’고 되어 있다. 그동안 많이 망설였다. 그런데 또 망설여진다. 연말연시에 얼마나 바쁠까?
이 바이러스 판에 만나자는 게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까 싶어서다. 그래 손 편지를 쓰자. 그걸 사진으로 찍어 보내거나 정성들인 사연이면 ‘톡’으로도 어울릴 거야. 아님 할 말을 녹음해서 보내는 것, 그래 어느 하나라도 좋겠다.
엊그제 성탄절에는 서툴지만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피아노로 치고 녹음해서 몇 사람에게 보냈다. 1절만 녹음했으니 길어야 1분이다. 길면 또 불편할지 모른다. 피아노 아니라도 좋다. 간단한 인사말을 녹음해서 보내면 어떻겠는가. 두고두고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시도를 해 보련다.
‘진달래꽃’ 말고는 외는 시가 없어 맘에 드는 시 한 수를 외웠다. 몇 줄 안 되지만 쉽지 않아 전화기에 녹음을 하고 또 사진으로 저장해서 보고 듣고 외웠다. 나의 어린 시절을 소환해주는 기형도 시인의 ‘엄마걱정’이다.
“열무 30단을 이고 / 시장에 간 우리엄마 /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 엄마 안 오시네 /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 아주 먼 옛날 /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몇 사람에게 이 시를 낭송해서 보낼 생각이다. 엄마생각을 하면 먹먹해진다. 찬밥도 귀하던 때가 그때였다. 빚을 지고는 갚지 못했다는 생각에 미안코 애달프다. 배경음악으로 무얼 깔지? 타이스의 명상곡이 좋을까, 집시의 노래, 치고이네르바이젠(Zigeunerweisen)이 좋을까, 어머님 은혜? 아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잖아요’가 좋겠다. 왜냐고요? 당신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여러분 고생 많았습니다. 새해에는 행복하셔야 해요!
조기조(曺基祚 Kijo Cho), 경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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