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유타주의 니파이(Nephi)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친구는 수백만평이나 되는 농장이 있다. 내게는 만평도 넓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가 어릴 땐 말을 타고 농장을 누볐단다.
지금은 네 바퀴 달린 앉은뱅이 ATV로 바꾸었다. 그런데 그 농장을 팔겠단다. 누가 살까? 그 넓은 농장을…
벼르다가 한번 시간을 내었다. 농장은 그야말로 끝이 안 보인다. 그런데 허허벌판이다. 황무지가 맞다. 다 경작하지 못하고 버려두었다. 가축을 방목한다는데 풀도 말라버린 벌판에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사료로 만들 풀을 기르는 밭은 원형 스프링클러가 물을 주는 야구장 정도나 될까? 짙푸르다. 그 밖의 농장에 살아 있는 것은 아름드리나무 몇 그루뿐이다. 뿌리가 땅속 깊이 물기 있는 곳까지 닿는 모양이다.
나머지는 다 말라 버렸다. 초지는 관정을 하고 모터로 물을 끌어 올려 쓰는데 전기료가 장난이 아니라서 감당하기 어렵다 한다. 그래서 조금만 경작한다.
그런 시골의 농장을 누가 사겠는가? 물이 문제다. 넘쳐도 문제고 모자라도 문제인 것이 어디 물 뿐이겠는가. 로키 산맥의 큰 강, 콜로라도를 막아 만든, 우리가 잘 아는 후버댐은 바로 미드 호수(lake mead)가 있어 라스베이거스 유역을 적셔준다.
하류에 있는 네바다, 애리조나, 캘리포니아는 물 부족이다. 지하수를 파서 쓰면 땅 속의 수위가 내려가 황무지는 늘어난다. 황무지에서 증발할게 없으니 구름도 비도 없다. 겨울에 내린 눈 녹은 물로 그나마 먹고 사는 지역이 많다. 수분이 증발하면 구름이 되고 구름은 식어 비가 되어 다시 땅을 적셔주는 순환이 자연적인 현상 아니던가.
자연엔 비와 바람이 순환해야하고 인체엔 피와 영양이 순환해야 한다. 사회엔 정보와 인정이 순환해야 하고 경제엔 물자와 자금이 순환해야 한다. 난데없는 역병으로 이동을 막으니 정이 마르고 돈이 마르고 사는 게 황무지가 되었다.
농장에 아름드리 큰 나무는 살아있지만 풀과 작은 나무들부터 말라 죽었다. 니파이의 친구 농장이 바로 우리 동네, 아니 전 세계의 모습이다. 자영업자와 영세상인들이 말라죽고 있다. 은행은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못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10등급으로 구분하는 개인의 신용은 1~3등급이라야 은행을 찾아볼 수 있다. 소득이 있고 담보가 있고 떼일 가능성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겐 이자가 낮다.
그 다음의 4~6등급은 담보나 소득 없이는 어렵다. 대부업체를 이용하면 24%까지 아주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한다. 못 갚은 이자는 또 이자를 낳게 될 것이다. 7~10등급은 사채업자를 찾거나 일부는 신체포기각서라도 써야 할지 모르겠다.
못 갚으면 살을 떼어가겠다는 계약서가 베니스의 상인에도 나오는 걸 보니 긴 역사에도 사라지지 않는 고리채(高利債)와 포도청인 목구멍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멕시코 다음으로 큰 코를 가진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으로 좀 가면 실리콘 밸리인 팔로 알토시가 있다. 명문 스탠포드 대학이 있고 유명한 기업들이 있다. 그리 크지도 않은 집들은 비싸서 차고에서 출발해 성공한 벤처기업들의 이야기는 귀에 익다.
그런데 11월 16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에 캘리포니아를 떠나 텍사스로 이주하는 한 기업인이 기업하기 ‘더러운’ 정책을 통렬히 비판했다. 실리콘 밸리의 상징인 원조 기업, HPE를 따라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줄줄이 떠났다. IT 관련으로 소프트한 기업일수록 떠나기가 쉽다. 통신망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고소득자와 기업의 실리콘 밸리 탈출은 비싼 집값과 세금폭탄에 전기 공급까지 제대로 안 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서툰 그린에너지 정책으로 전기가 부족해 한해에 몇 만 건의 정전이 있었단다. 이게 말이 되는가?
기업을 적대시하고 고소득자를 죄인시 한다면 일자리가 생겨날리 만무하다.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말이다. 안 그래도 ICT 기술의 발달로 원격근무와 협업이 가능하고 제조는 로봇화, 무인화, 자동화가 가능하니 비싼 지대와 인건비를 부담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떼돈은 아니라도 돈을 번 기업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공헌을 하면 즐겁고 소득의 재분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규제는 너무 심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떠난 기업 따라 일자리가 사라졌고, 그들이 내던 법인세도 날아갔다. 엎지른 물이다.
치산치수와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하기 어렵다 했다던데 돈가뭄, 일자리 가뭄, 보금자리 가뭄을 어찌 해결하려는가?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무엇이 중헌디?’ 제발 이전투구(泥田鬪狗) 말고 민초들의 돈가뭄, 일자리 가뭄, 보금자리 가뭄에 단비를 내리게 기우제라도 지내소서!
조기조(曺基祚 Kijo Cho), 경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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