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르치’가 고긴가? 갈치, 넙치, 날치 등의 돌림이지만 그 반열에는 한참을 못 미치는 것 같다. 물론 크기를 보고 하는 말이다. 칼슘의 제왕이라 선전하지만 그리 인기가 있는 것 같지 않다. 멸치는 며르치, 메르치, 메루치, 메리치, 며루치, 멜치 등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모두 방언이다.
‘며르치 똥’이라고 있다. 뱃속에 시커멓게 보이는데 내장덩어리 일 것이다. 사람처럼 5장 6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밥통과 소화기관, 배출기관까지 한 덩어리 일 것이다.
그런데 쓰다. 그래서 밥통과 쓸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배를 갈라 뜯어내고 먹는데 나는 그게 아까워 그냥 통째로 먹는다. 어촌 마을의 닭도 떼어내고 먹는다는 그 멸치 대가리를 나는 잘 먹는다.
언젠가 선생님의 말씀대로 통째로 먹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고 큰 고기가 멸치를 잡아먹을 때 대가리 떼고 똥 빼고 먹더냐 생각하니 그냥 먹는 데에 거부감이 없다.
영양식이라 싶다. 나는 멸치 욕심이 많다. 간간한 게 고소하기까지 하다. 고추장을 듬뿍 찍어 먹으면 얼얼한 게 일미다. 더울 때 시원한 맥주 한 잔의 안주로 딱이다. 치맥에 비길 바가 아니다.
갓 난 멸치부터 한 뼘이 넘는 멸치까지 크기별로 나눈다. 크기를 우리말과 일본말로 섞어 부르고 있어서 고쳐야 할 일이다.
가장 작아 눈만 붙은 것을 ‘실치’라 하고, 지리멸(1.5㎝ 이하), 시루쿠(2㎝ 이하), 가이루(2㎝ 정도), 가이루고바(비늘돋치기: 2.0~3.1㎝), 고바(3.1~4.0㎝), 고주바(4.0~4.6㎝), 주바(4.6~7.6㎝), 오바(7.6㎝ 이상)로 나누고 가장 큰 것을 ‘정어리’라고 부르는데 정어리는 아니지만 정어리만큼 크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4, 5, 6월을 금어기로 하니 아마 그때에 알을 낳고 부화하는 모양이다.
한밤중에 성어 한 마리가 4,000 ~ 5,000개의 알을 낳으면 1~2일내에 부화되는데 그 새끼들이 무리를 이루며 자란다. 플랑크톤이나 작은 새우를 먹고 자라는데 새우를 많이 잡아먹어 배에 새우 색이 드러나는 멸치는 귀하여 값이 많이 나간다.
눈만 붙은 것 같은 잔챙이(실치와 지리멸)를 잡는 것은 아깝다. 그게 열 배, 스무 배로 자라면 얼마나 많겠는가 말이다. 멸치를 잡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쌍끌이 기선권현망(멸치권현망) 어업의 제일 비중이 높다.
큰 배 몇 척으로 선단을 이루어 어로장이 지휘하는 탐색선에서 어군탐지기를 보고 멸치떼의 크기와 이동 경로를 판단해 작업선이 좌우로 그물을 둘러쳐서 양쪽에서 조여 오면서 잡는 방법이다.
그물에 둘러싸인 멸치떼는 그물을 배 위로 끌어올리기 전에 양수기로 바닷물과 함께 빨아올린다. 그러고는 채반(발)에 담은 채 큰 솥에 소금을 넣고 끓여 물을 빼고 공장으로 가져와 냉풍건조를 시킨다. 그러니 탐색선, 운반선 두 척, 쌍끌이 작업선 두 척이 모두 5척이 기본이다.
다른 생선과 마찬가지로, 먹거리는 신선도가 중요하다. 잡은 멸치는 끓이는 시간, 건조와 보존 온도 등을 제대로 관리해 반듯하고 빛이 고운 것이 제 값을 받는다.
물론 크기가 작을수록 귀한 대접을 받는다. 부화한지 오래되어 큰 멸치는 쌈밥으로 먹거나 젓갈용으로 쓰고 말려서 다시를 내기도 한다.
살이 많은 이 큰 멸치를 분말로 만들면 활용도가 높을 것이다. 멸치잡이에 힘이 드니 일손이 귀하다. 바람이 불면 출어를 못한다.
먹이 따라 움직이니 멸치떼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기후변화는 생태계를 흔들어 놓고 있다. 남해 연안 바다에 설치하려는 풍력발전기도 어업을 곤란하게 한다.
소음도 문제지만 그물을 둘러치기에 불편하다. 욕지도 남방의 여러 섬들 사이는 각종 어류의 산란지이고 황금어장이다.
하필이면 거기에 풍력발전을 한다니 제대로 알고나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신공항이 들어선다는 가덕도는 낙동강 하구의 민물과 바닷물이 섞여 황금어장이 형성되는 ‘새바지’ 옆이다. 어업에는 타격이다. 기후변화로 생태계가 교란되어 어업이 위기다.
인건비와 선박의 수리비, 감가상각비, 어선과 끓이는 솥의 연료비, 그물과 집기의 수선 교체비용, 공장에서 건조하고 선별하여 상품화하는 비용 등에 비하여 경매로 넘기는 가격은 덤핑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또 사람들이 잘 안 먹는단다. 그래서 먹기 좋은 영양식으로 개발하려하니 그놈의 똥이 문제다. 미국에 수출하려니 그 속에서 식중독을 일으키는 보툴리늄 균이 발견된 적이 있었단다.
‘며르치 똥’을 어떻게 제거하느냐가 숙제다. 수작업으로 하면 인건비를 못 맞춘다하니 사람 손 같은 로봇이 나올 때 까지는 꿈같은 이야기다.
멸치로 개발한 제품이라야 겨우 ‘다시팩’이다. 멸치와 다시마 조각들을 포장해 우려내고 버리도록 1회용으로 만든 것이다. 똥을 뺀 멸치를 바싹 말려 보드라운 가루로 만들면 면이나 떡을 만들 때 섞을 수 있고, 다른 음식에 맛과 영양을 더할 수 있다.
어민이 살고 국민이 건강해지는 그 방법은 똥 빼는 문제로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걸까? 색깔도 냄새도 전혀 다른 ‘며르치 똥’이 왕이다.
조기조(曺基祚 Kijo Cho), 경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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