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순부터 등나무 꽃이 너무 곱다. 이때 아니면 언제 귀히 보일까? 보라색 레이스에 향이 풀풀 나는 등나무 꽃은 늘어진 모습이라 바람이 불면 더 아름답다.
등나무는 콩과식물이라 척박하고 황폐한 땅에서도 잘 자라서 산사태를 방지하게 심기도 한다. 꽃도 풍성하게 피어서 꿀을 따는 밀원식물이다. 오래전 보릿고개에는 어린잎이나 꽃을 따 먹기도 하였다.
주전버리라곤 없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적절한 굵기의 넝쿨은 바구니를 만드는데 쓰기도 했지만 등가구를 만드는 목재는 아니다. 요즈음은 울타리나 그늘을 만들어 주는 용도가 대부분이다.
칡은 이보다 늦게 6~8월에 꽃이 핀다. 칡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식물이다. 부드러운 잎은 사람이 먹고 잎과 덩굴은 가축의 사료로 쓴다. 길게 자란 줄기는 가을에 걷어 잘 사려두었다가 끈으로 쓴다. 삶거나 물에 불리면 부드러워져서 빗자루를 만들거나 울타리를 묶을 때 썼다. 뿌리는 캐어 칡즙을 내어 마시거나 건조시켜 먹거리로 쓰는 갈분(葛粉)이다.
약으로도 쓰는 갈근탕의 재료다, 칡꽃을 따서 술을 담가 먹으면 향기롭다. 칡도 아카시아처럼 밀원 식물이다. 칡 꿀은 아카시아 꿀과 달리 쌉쌀한 맛이 강한데 귀하여 조금 더 비싸게 팔린다. 뿌리가 땅 속 깊이 파고들어가니 산사태 방지에 좋다.
칡이나 등나무가 다른 나무를 감아 오르면 그 나무는 볕을 받지 못하여 위험해 진다. 칡, 나팔꽃, 메꽃, 새삼 등은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등나무나 인동, 더덕, 환삼덩굴 등은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그게 본성이니 바뀌는 일은 없다.
서로 감는 방향이 다르듯 얽히고설킨 것을 갈등(葛藤; conflict)이라 하는데 칡(갈; 葛)과 등(등; 藤)나무에서 온 말이다. 사람들이 생각이 다르니 갈등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마는 너무 심하여 대립하면 감정으로 번지기 쉽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 하여가(何如歌)라는 시조다. 왕씨의 고려를 이씨의 나라로 바꾸고자 역성혁명을 꿈꾸며 세력을 키우던 이성계가 벽란도에서 사냥을 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드러누웠을 때 고려의 충신 정몽주는 병문안을 가려한다.
병문안을 핑계로 이성계를 제거하려는 정몽주의 눈치를 챈 아들, 이방원이 이성계를 개경으로 모신다. 정몽주를 포섭하라는 이성계의 지시를 받은 이방원이 병문안 온 정몽주에게 던진 노래가 바로 이 시조였다.
정몽주는 단심가(丹心歌)로 응수한다. 此身死了死了(차신사료사료) 이 몸이 죽고 죽어/ 一百番更死了(일백번갱사료) 일백 번 고쳐죽어/ 白骨爲塵土 (백골위진토) 백골이 진토 되어/ 魂魄有也無 (혼백유야무) 넋이라도 있고 없고/ 向主一片丹心(향주일편단심)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寧有改理與之(영유개리여지) 가실 줄이 있으랴/ 이 시조 한 편으로 회유를 포기한 이방원은 선죽교에서 철퇴를 내리쳤다.
정몽주와 이성계의 갈등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고려는 요동 문제를 놓고 명과 외교적으로 대립하고 있었다. 백성들은 전란에 시달리고 땅과 사병(私兵)을 가진(토지겸병) 권세가들에게 수탈당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구세력을 대표하는 최영 장군과 급진파 신진사대부들의 지지를 받는 이성계는 향후의 국정방향을 놓고 미묘한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었다. 대부분, 개혁세력이 민심의 지지를 받는다.
1388년(우왕 14년)에 우왕의 명을 받아 요동을 공격하기 위해 진군했던 이성계 등이 압록강 가운데에 있는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과 최영장군을 제거하고 고려의 실권을 장악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위화도회군”이다.
이성계는 온 나라의 군사들이 원정에 나서면 왜적이 허점을 노려 침입할 것을 우려하였다. 사실 압록강 물이 불어 군사가 강을 건너가는 것조차도 문제이긴 했다. 이성계는 꼭 요동을 공격하고자 한다면 추수가 끝난 가을철에 군사를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곧 겨울이 되면 추워서 철수해야 한다.
14세기 말 당시 고려는, 안으로는 기존의 귀족 세력인 권문세족과 그에 반발하는 신진 사대부들이 대립하여 정치가 혼란하였고, 밖으로는 홍건적과 왜구의 약탈을 받았고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이어지는 원·명 교체기의 혼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 무렵 고려의 무신인 이성계는 왜구, 홍건적, 몽골족, 여진족의 침입을 여러 차례 물리치고 명성을 얻어 중앙 정계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성계는 개혁의 주인공으로, 새로운 인물로 지지 받지만 명나라는 소용돌이속의 고려와 신흥국인 조선을 지배하게 된다. 고려는 통일신라 말기에 송악(개성) 지방의 호족인 왕건이 918년에 건국하여, 이듬해 개경이라 이름을 고치고 수도로 삼았다. 그 뒤, 935년에 신라, 936년에 후백제를 복속하였다. 그러다가 1392년에 막을 내린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것이다.
삼국시대는 제쳐두고라도 요나라인 거란족, 금나라인 여진족, 몽골족의 원나라에서 명나라, 청나라, 중공으로 이어진 그 대륙 세력이 오늘날까지, 여전히 우리를 무시하고 위협한다. 어떻게 하면 이 고리를 끊을까? 일치단결하여 힘을 모아야 하는데 우리의 내분과 갈등은 여전하다. 아니 더 심하지 않은가? 갈등은 마침내 제 발등을 찍는다.
조기조(曺基祚 Kijo Cho), 경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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