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신 와인의 8할이 화이트다. 그중에 절반쯤은 소비뇽 블랑이다. 처음에는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을 주로 마셨지만 원산지라는 프랑스 와인을 찾기 시작했다.
프랑스 소비뇽 블랑을 마셔보니 신기했다. 명징함은 뉴질랜드가 확실한데 뼈대나 여운은 프랑스 게 뛰어났다. 풍미의 절댓값은 작지만 입체적이고 옹골찼다.
프랑스 소비뇽 블랑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게 상세르였다. 상세르는 프랑스 중부 루아르 지역의 도시다. 상세르는 1000㎞가 넘는, 프랑스에서 가장 긴 강인 루아르강 상류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우리나라 대구처럼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다. 포도의 당도와 산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와이너리 푸르니에는 1926년 문을 열었다. 이곳은 상세르가 프랑스 와인 최고 등급 인증(AOC)을 받는 데 큰 기여를 한 전통 있는 와이너리다. 부르고뉴처럼 피노 누아르 같은 레드도 생산하지만 주력은 화이트인 소비뇽 블랑이다.
푸르니에 와이너리 누리집을 보면, 현재 생산하는 상세르 종류만 12가지다. 이 가운데 내 눈길을 끈 건 그랑드 퀴베 쇼두욘이었다.
상큼한 풀 향기가 특징인 소비뇽 블랑은 보통 초록색 등 밝은색 병에 담긴다. 푸르니에 상세르의 일부도 수박색 병에 출고된다. 하지만 그랑드 퀴베 쇼두욘은 특이하게 황금색 병을 쓴다. 황금색 소비뇽 블랑은 ‘뜨거운 냉면’처럼 낯설어 보인다.
황금색 병은 이 와인의 상징성 때문이다. 이 와인은 푸르니에 와이너리에서 가장 오래된 30~50년생 나무에서 선별한 포도를 쓴다. 이런 포도로 만든 와인의 80%는 스테인리스 탱크에, 20%는 새 오크통에 각각 6~8개월 숙성해 블렌딩한다.
그래서 이 와인은 소비뇽 블랑치고는 긴 10년 이상을 견딜 수 있다. 평론가들이 이구동성으로 “2년 뒤에는 더 맛있을 거 같다”는 평가를 남긴 까닭이다. 이런 양조법은 상세르와 거리가 가까운 부르고뉴 화이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 와인이 도버해협의 특산물인 가자미와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봄 가자미를 오븐에 구워 크림소스와 파프리카소스를 얹은 뒤 와인과 마셔봤다. 봄 가자미의 부드러운 살과 크림소스는 이 와인에 잘 어울렸다.
이 와인을 마셔보면, 소비뇽 블랑 특유의 쨍한 맛과 레몬, 잘 익은 배 맛이 느껴진다. 그리고 작은 조약돌 같은 미네랄감과 오크 터치의 특징인 열대과일 맛이 느껴지면서 풍부한 여운을 준다.
놀라운 건 산도다. 선별된 포도 덕분인지 양조법 덕분인지, 산도가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실 때까지 흐트러지지 않았다.
내가 마신 와인은 2017년 빈티지였는데 장기 숙성한 부르고뉴 샤르도네나 샴페인처럼 쨍쨍했다. 이 와인이 소비뇽 블랑 가운데 특이하게 닭고기 등 가금류와 어울린다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쇼두욘이란 이름은 푸르니에 와이너리가 있는 베르디니(Verdigny) 마을의 중심가 이름인 쇼두(Chaudoux)에서 따온 것이다. 쇼두욘은 프랑스어로 ‘쇼두에서 온 소녀’란 뜻이다.
하지만 기존의 소비뇽 블랑을 넘어서려는 의지로 충만한 이 와인은 발랄한 소녀보다는 지혜롭고 우아한 여인이 더 어울린다. 이 와인이 멋진 황금색 병에 담긴 까닭일 것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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