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 수상도시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이 코로나19 여파로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가 코로나19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지난 9일(현지시간) 자국 국민 6천만명의 이동을 제한하는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여러 차례 강력한 억제 조치를 취했는데도 누적 확진자가 9천명을 넘어서는 등 확산세가 멈추지 않자 국가 전체를 봉쇄하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ANSA통신 등 이탈리아 언론에 따르면,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이날 밤 기자회견을 열어 “10일부터 이동제한령을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이탈리아는 지난 8일부터 코로나19 확진자가 대량으로 발생한 북부 롬바르디아주를 포함한 북동부 5개주 14개 지역에 ‘레드존’을 설정해 1천6백만여명의 이동을 제한했는데, 하루 만에 이탈리아 국민 6천만명 전체를 대상으로 이동제한령을 발동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 전역에서 필수적인 업무나 긴급한 건강상의 이유를 입증하지 못하는 한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이 제한될 전망이다. 외부 활동도 제약된다. 장례식과 결혼식을 포함해 다수가 모이는 행사는 금지된다. 초·중·고와 대학은 휴교에 들어간다.
극장, 박물관, 문화센터, 체육관, 수영장 등 생활문화시설은 모두 문을 닫는다. 프로축구 리그 세리에A 등을 포함해 스포츠 경기도 중단된다. 술집과 클럽 영업은 전면 중단된다. 식당과 카페는 오후 6시까지만 문을 연다. 이동제한령을 어길 경우 벌금 또는 3개월의 구류형을 받을 수 있다. 도로와 기차역, 공항에는 검문소가 설치된다. 이 같은 조치는 다음달 3일까지 유지된다.
콘테 총리는 “우리 모두 이탈리아를 위해 무엇인가는 포기해야 한다”면서 “모두가 협력하고 엄격한 규칙에 잘 따라줄 때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콘테 총리는 또 “가장 암울한 시간(darkest hour)을 맞았지만 우리는 해낼 것”이라면서 단합을 호소했다. “가장 암울한 시간”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인들의 단합을 촉구하는 연설에서 사용해 유명해진 말이다.
이탈리아가 이처럼 특단의 조처를 시행한 것은 강력한 억제책에도 불구하고 사흘 연속으로 신규 확진자가 1천명을 넘기는 등 확산세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콘테 총리는 이날 오후 기준으로 신규 확진자가 전날보다 무려 1천8백7명 늘어나 9천1백72명을 기록하고 사망자도 하루 사이 97명이 늘어 4백63명으로 파악됐다는 보건당국의 발표가 나온 지 몇 시간 후에 전역 봉쇄 조치를 발표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특히 의료 체계가 허약한 남부 지역에서 코로나19 감염이 급증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전날부터 시행된 14개 지역 봉쇄 조치가 기대와 달리 혼란을 빚은 것도 보다 강력한 조치를 내놓은 배경으로 보인다.
이탈리아에서는 토요일이었던 지난 7일 14개 지역 봉쇄 소식이 전해지며 시민들이 앞다퉈 해당 지역을 빠져나가기 위해 기차역과 도로로 몰려나와 혼란이 빚어졌다.
교정당국이 집단 감염 방지를 위해 교도소 수감자들의 면회를 제한하자 22개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의 폭동이 일어나 7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탈옥하기도 했다. 온라인에서는 병원이 60세 이상 환자를 받지 않는다는 루머가 퍼졌다.
이탈리아 정부는 코로나19가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인 지난 1월 말 로마에서 중국인 관광객 2명이 확진 판정을 받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중국 직항노선 운항을 중단했다.
유럽에서 가장 선제적인 대응이었으나 중국을 여행한 적이 없는 30대 남성 슈퍼전파자가 나타나면서 확진자가 걷잡을 수 없이 증가했다. 특히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전체의 25%를 차지해 많은 사망자가 나왔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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