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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거니 이런 맛! 중국‘혁명의 맛’은 정말 매웠을까

작성자 사진: WeeklyKoreaWeeklyKorea

<혁명의 맛>이 중국 후난성 미식여행의 시작이었다. 일본 음식평론가인 가쓰미 요이치가 쓴 이 책에는 중국 음식문화의 변천이 잘 기술되어 있다. 문화대혁명(1966~1976) 때 처음 중국을 방문했다는 지은이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음식 등과 대적해도 손색이 없는 광둥요리가 중식의 대표성을 띤다는 통념이 중국 본토에선 틀린 얘기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진짜 중국의 맛은 무엇인가?’ 가쓰미는 질문을 툭 던진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면 어렴풋이 정답이 보인다.

중국의 맛은 ‘매운맛’이란 것. 왜 하필 매운맛인가? 마오쩌둥 때문이다.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매운 것을 먹지 않으면 혁명을 할 수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인민해방군(팔로군)에게도 고추를 권했다는 그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뒤에도 전담 요리사에게 음식은 매울수록 좋다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매운맛은 통각이다. 미뢰(미각세포)가 아프고 혀가 쓰라리다. 사람들은 무슨 대단한 용기라고 그 매운맛을 또 찾는다. 희한한 노릇이다.

고통이 진할수록 중독성도 강한 게 매운맛의 특징이다. 어쩌면 혁명의 속성도 같을지 모른다. 중국 후난성은 마오쩌둥의 고향이다. 중국에 고추가 처음 전파된 곳도 후난성이다. 후난성의 성도 창사에서 110㎞ 정도 떨어진 시골 마을 사오산에서 태어난 그는 창사에서 학업을 마쳤다. <혁명의 맛>을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마오쩌둥이 즐긴, 중국 혁명의 동력이 되었다는 매운맛이 궁금했다.


매운맛도 종류가 다양하다. 쓰촨성의 얼얼하고 ‘쩡’한 매운맛이 있는가 하면, 우리네 청양고추처럼 확 달아오르는 매운맛도 있다. 짝사랑에 속앓이하는 팔불출처럼 혼자 혀로 그려보고 머리로 상상하길 여러 날. 희소식이 날아왔다.


중국음식통인 배화여자대학교 전통조리학과 신계숙 교수가 3박4일 일정으로 후난성 미식여행객을 모집하니 ‘붙을 사람은 붙으라’며 ‘엄지척’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린 게 아닌가. 간절히 원하면 소원은 이뤄진다고 했다. 지난달 12일 이른 아침 음식평론가, 한식 전문가 등 음식업계 27명과 함께 창사행 비행기에 올랐다.


◎ 쓰촨성의 매운맛은 예고편?

“후어… 도무지… 후… 물 좀!” 8월12일 낮 12시, 창사 시내에 있는 식당 ‘진리샤훠궈’(錦里?火鍋). 일행이 그곳에서 처음 만난 맛은 공포에 가까운 매운맛이었다. 고추를 듬성듬성 썰어 넣은 훠궈(중국식 샤브샤브)는 불타는 전쟁터와 다름없는 뜨거운 풍미를 보란 듯이 자랑했다. 얼얼하고 ‘쩡’했다. 얇은 혀 껍질을 베어내는 듯한 매운맛. 후난성 매운맛의 위력인가 싶어 감탄하고 있었는데, 신계숙 교수가 뜻밖의 설명을 했다. 반전이었다.


“쓰촨식 훠궈인데 후난성의 매운맛과 차이가 있다. 쓰촨성의 매운맛이 ‘마(麻)하고 랄(辣)하다’면, 서서히 달아오르는 매운맛은 후난성의 것”이라고 말했다. ‘마하고 랄’한 맛은 아리고 화끈거리는 통각이다. 현대 중국사에서 마오쩌둥과 함께 자주 거론되는 덩샤오핑도 매운맛을 즐겼는데, 그의 고향이 쓰촨성이다.

중국 권력엔 매운맛이 있다. 진리샤훠궈의 매운맛은 마치 후난성 고추 맛의 예고편 같아 두려움이 엄습했다. 한편으로는 후난의 매운맛의 실체가 더욱 궁금해졌다.

기대와 두려움을 안고 찾은 두번째 식당, ‘하오스상’(好食上).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반긴 것은 ‘음식은 국경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한글이 새겨진 식탁보였다. 마치 한-중 정상회담장에 앉은 기분으로 19가지 음식을 경험했다. 땅콩소스를 뿌린 샐러드는 달고, 쫀득한 살점과 닭발이 같이 담겨 나온 탕은 다소 짰다.

얇게 썬 마늘을 잔뜩 뿌린 랍스터는 실처럼 가는 면과 한 몸이 돼 등장했다. ‘어라! 맵지 않네!’ 고수가 잔뜩 올라간 조린 돼지고기도 기대엔 못 미쳤다. 고급요리인 자라찜도 비릿할 뿐 맵지 않았다. 기대가 서서히 실망으로 바뀌어 갈 때쯤 생선머리찜이 등장했다. 머리와 꼬리가 그대로 붙어 있는, 후난성의 대표 요리다. 중국 음식의 특징 중 하나는 오리든 생선이든 식재료를 통째로 조리하는 것이 많다는 점.

호수 둥팅호(洞庭湖) 남쪽에 있다고 해서 후난(湖南)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지역은 둥팅호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샹장강이 중심이다. 호수나 샹장강에서 잡은 민물생선은 예로부터 신선하고 맛나기로 유명하다.


생선찜 위엔 중화인민공화국 국기처럼 붉은 고추가 잘게 잘려 올라가 있었다. 살짝 집어 입에 넣고 혀로 살살 쓰다듬고 꽉 깨물자 매운맛이 확 퍼졌다. ‘옳거니, 이런 맛이구나.’ 하지만 반가운 마음은 잠시.

주인공은 생선이다. 하얀 생선과 함께 먹은 고추는 금세 자신의 고유한 색을 잃어버렸다. 고추는 매웠지만, 생선은 순했다. 실망이 커 배신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예고편에서 경험한 매운맛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고작 이 정도의 매운맛이 혁명의 동력이었단 말인가.


숨을 고르고 잠시 멍하니 이국의 창밖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바람결에 내면의 속삭임도 따라왔다. ‘집착을 버리자!’ 미식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달리기가 아니라 현재를 체험하고 자신을 알아가는 행위다. 그러자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고로 후난성 일대는 너른 중국에서도 식재료가 풍부하고 신선하기로 이름난 곳이다. 토양도 비옥해서 질 좋은 쌀이 생산된다. 특히 찹쌀이 고급이다. 한국인에게는 유명한 관광지인 장가계(장자제)를 필두로 한 산악지대에선 버섯과 진귀한 야생 약초를 채집할 수 있다. 둥팅호 주변에선 잘 사육된 통통한 가금류와 가축을 흔히 본다.


◎ 담백하고 슴슴한 맛의 반전

8월13일, 식당 라오우사궈(老屋砂鍋). 쉬젠차오(徐建橋) 후난요리 홍보대사가 추천하는 식당이다. 이날은 쉬젠차오도 동행했다. 중국의 여러 요리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이 벽에 주르륵 걸려 있는 라오우사궈는 식당의 구성이 독특했다.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천장에 달린 붉은 등.

ㄹ자 형태인 주방은 누구나 지지고 볶는 조리 과정을 볼 수 있게 설계됐다. 주방 앞 좁은 선반엔 수십 가지 식재료가 전시돼 있었다. 비릿한 생선도, 탱탱한 가지도, 향긋한 오이도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꼴이었다. 식재료 옆엔 작은 죽통이 있었는데 그 안엔 음식 이름과 가격이 적힌 나무막대기가 꽂혀 있었다. 그것을 뽑아 종업원에게 주면 주문은 끝이다.



맑은 사자머리완자탕, 매콤하게 맛을 낸 곱창조림, 가는 면과 함께 나온 생선머리찜 등. 일행은 초록빛 콩나물과 아삭한 오이, 신선한 오크라에 감동했다. 이제 누구도 매운맛을 찾지 않았다. 햇볕을 그대로 받고 자란 초록색 콩나물은 신선하기가 아침이슬 같았고, 맑은 완자탕은 슴슴하기가 평양냉면 수준이었다.


분증법으로 찐 밥은 색다른 식감을 선사했다. 씹을수록 죽처럼 부드러워졌다. 분증법은 쌀이나 찹쌀을 말린 다음 빻아서 가루로 만든 뒤 찌는 조리법이다. 고구마나 고기 등 취향에 따라 여러 가지 재료를 더 넣어 찌기도 한다.

고급 한식당 온지음의 박성배 요리사는 “사자머리완자탕은 정말 부드럽고, 초록색 콩나물에선 비린내가 전혀 안 난다. 채소가 특히 신선하다”며 귀국하면 바로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주대학교 한식조리학과 정혜정 교수는 “소박하고 정성스럽게 만든 집밥 같은 느낌이다.


멋을 부리지 않았는데 맛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후난요리의 정수는 이런 것”이라고 했다. 20~30년 경력의 음식업계 미식여행객들은 이 식당을 ‘엄지척’ 꼽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마오쩌둥의 매운 혁명의 맛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남았다. 왜 맵지 않은 걸까?

그 이유를 쉬젠차오 후난요리 홍보대사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대중식당들은 외지에서 오는 이들의 입맛을 고려해 예전보다 순하게 조리한다. 평균적인 맛을 지향한다. 하지만 지금도 가정에서는 예전처럼 맵게, 더 맵게 해서 먹는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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