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섬 바다·사막에서 누리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 WeeklyKorea
- 1월 24일
- 4분 분량

크리스마스트리가 드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었다. 코끝에 열대 나라의 다스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 그런데 이 조합, 왠지 낯설다. 여행이 매력적인 것은 이런 낯선 경험 때문이 아닐까. 낯섦은 신선함으로 다가오고, 신선함은 쉼과 삶의 원료가 된다.
지난달 28일부터 사흘간 여행한 북위 1도에 위치한 인도네시아 바탐섬과 빈탄섬 곳곳은 각종 크리스마스 장식과 트리, 관광지 직원들의 산타 모자와 루돌프 머리띠 등으로 여행자의 눈길을 끌었다. 머무는 동안 이곳은 27~32도의 전형적인 여름 기온을 보였다.
0도 안팎을 오가는 추운 겨울 나라 한국에서 117년 만에 펄펄 내린 눈을 뚫고 온 터라, 처음 경험하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더욱 반가웠다. 인천국제공항에서 6시간40분 걸려 28일 새벽 5시55분(이하 현지시각) 바탐섬에 있는 항나딤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의 폭설로 5시간 넘게 연발한 뒤였다. 공항에서 들이마신 바탐의 첫 새벽 공기는 상쾌함과 함께 3일간의 여행에 대한 설렘을 안겨줬다.
‘또 하나의 발리’ 꿈꾸는 섬
바탐은 인도네시아의 1만8천여개의 섬들 중 북부 리아우제도에 속해 있는 한 섬이다. 제주도의 85% 크기이지만, 인구는 제주도(약 70만명)보다 두배 가까운 130만명이 산다. 최초의 주민은 231년 들어온, 오랑라웃으로 알려진 말레이족이다.

이들은 이 섬 인구의 약 10%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90%는 외부에서 유입된 인구인데, 이 중 30%가 화교이고 나머지가 인도네시아인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하나의 발리’를 꿈꾸는 바탐은 1970년대에 공업화 구역으로 지정된 산업도시이자 자유무역지대로 비관세 지역이라 물가가 저렴한 편이다.
이에 배로 45분~1시간이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나라인 싱가포르 관광객이 가장 많다. 이들은 주로 골프와 쇼핑, 휴양을 위해 바탐을 찾는다.
바탐 관광청 자료를 보면, 올해 1~9월 싱가포르 관광객이 49만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말레이시아인 19만명, 중국인 3만2천명, 인도인 3만명, 일본인 7300여명 등 순이었다. 한국인 관광객은 2019년 3만명이 바탐을 찾았으나 코로나19 이후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제주항공이 지난 10월16일부터 주 4회(수·목·토·일) 인천~바탐 직항 노선을 운행하고 있다. 한국 여행객에게 이전까지는 바탐이 싱가포르 여행 중에 하루 정도 잡아 다녀오는 여행지였지만, 이제는 바탐으로 바로 가 바탐섬과 바탐의 이웃 섬인 빈탄섬(바탐에서 보트로 15~30분 거리)을 직접 즐길 수 있게 됐다.
‘보글 보글 보글’ 거품을 뿜어내며 바닷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바닷물은 따스했고, 바다 한가운데였음에도 수심이 2m 정도로 깊지 않았다. 고요한 물속 바닥은 산호들의 세상이었고, 그 위에서 손바닥 반만한 물고기들이 옹기종기 노닐고 있었다.
주황색 바탕에 하얀 띠를 두른 흰동가리(아네모네피시. 영화 ‘니모를 찾아서’로 유명해진 물고기)와 이름 모를 귀여운 검은색과 줄무늬 모양 등의 물고기 떼는 침입자들을 보자 이리저리 재빠르게 흩어졌지만, 멀리 가지는 않았다.
버스 타고 이동해 온 바탐 갈랑바루섬에서 보트를 타고 서남쪽으로 물살을 가르며 달리자 20분 만에 라노섬에 도착했다. 라노섬에서 이처럼 스노클링을 즐겼다. 이곳에서는 또 바나나보트, 카누, 제트스키 등의 해양 액티비티도 가능하다.
라노섬 주변 지역엔 이산화탄소 저장 능력이 뛰어난 맹그로브 나무가 울창하다. 고운 백사장에 야자수들이 우뚝 솟아 있는 라노섬은 아담했다. 노천카페에서 맥주와 음료를 마시며 여행객들은 나른한 휴식을 즐겼다.
샤워장에서 소금기를 씻어내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곳곳에 붉은 속살을 드러낸 황토가 눈에 띄었다. 곳곳에서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바탐은 한창 개발 중인 관광지다. 스노클링을 한 뒤 점심을 먹었지만, 여행자는 늘 배고픈가 보다. 도로변에 있는 지역 카페에 잠시 버스를 멈춰 감칠맛 나는 구운 옥수수와 싱싱한 야자수 열매 음료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불교사원·모스크도 볼거리
이내 버스는 중국식 불교사원에 도착했다. 1991년 바탐의 중국인 공동체가 지은 이 사원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불교사원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크게 세개의 별도의 공간이 있다. 가운데 공간에 ‘석가모니’, 왼쪽엔 ‘관공’(‘삼국지연의’에 나오는 관우), 오른쪽에 ‘관인’(관음)의 상이 있고, 각각 제단이 있다.

이 불교사원 가이드인 안나는 “하루 평균 관광객과 현지인 400명이 이곳을 찾아오는데 주로 먼저 석가모니에게 본인과 가족의 건강을 빌고, 그다음 왼쪽 공간으로 가서 관공에게 언제 어디서든 안전하고 탈 없이 지내기를 빌고, 마지막으로 오른쪽 공간의 관인에게 가서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빈다”고 설명했다.
이곳은 예배 공간이기도 하지만 학교이기도 하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있어, 이날도 교복 입은 학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중국인과 인도네시아인 등 4천여명의 학생들이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을 나설 즈음 굵은 빗줄기가 세차게 쏟아졌다. 열대성 기후인 인도네시아는 사계절이 아니라 건기와 우기로 나뉜다. 우기는 대체로 11~3월로 지금은 우기에 해당하지만, 기후변화로 예측은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한국말을 잘하는 인도네시아인 가이드 에릭 산토소(28)는 “오늘 일기예보에서 비가 안 온다고 했는데, 바탐 날씨는 변덕스러워서 예측할 수가 없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곳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에는 이슬람 예배당이 있다. 인도네시아는 인구의 약 87%가 무슬림인 이슬람 국가다. 그런 만큼 바탐 시내에 모스크가 많이 있는데, 그중 ‘라자 하미다’는 바탐의 대표적인 이슬람 예배당이다.
2년여의 대규모 보수 공사를 거쳐 지난 9월 다시 일반에 공개됐다. 1만명의 예배자를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다. 파란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룬 건물은 차분하면서도 엄숙하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예배 공간 바깥쪽까지 들어가볼 수 있었는데, 이 건물 외곽 계단 아래에서부터 신발을 벗고 맨발로 가야 했다. 비가 온 뒤라 미끄러워 조심조심 걸었다. 기도 시간이 아니어서인지 기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바탐의 원주민인 오랑라웃이 사는 발레발레 원주민 마을은 바탐의 주요 관광코스 중 하나다. 우리 일행이 탄 버스가 도착하자 이 마을 아이들이 몰려와서 두 손을 흔들며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며 반겨줬다.
예상치 못한 환대에 놀랐는데, 가이드는 코로나19 전에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왔었다고 했다. 이곳은 뿌리가 도드라진 맹그로브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어촌이다. 고즈넉하고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200가구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남자들은 바다에서 먹고사는 어부이고, 여자들은 30분 정도 떨어진 담배·초콜릿·전자제품 공장에서 밥벌이를 하는 노동자라고 한다. 이날 마을 한편 오두막에 앉아 있던 마을 주민 카르노(55)는 “주로 도미와 꽃게를 많이 잡는다”며 “어제부터 비가 오고 파도도 세서 배를 띄우지 못해 쉬고 있다”고 말했다.
바탐에는 인도네시아의 유명 관광지 발리와 풍경이 비슷하다고 해서 ‘미니 발리’로 불리는 곳도 있다. 미니 발리로 불리는 해변에 있는 투리 비치리조트는 크리스마스트리와 미니 전구로 장식한 사슴 모형, “당신의 메리 크리스마스를 기원합니다” 문구가 적힌 펼침막과 기둥장식 등으로 화려했다. 넓은 해변에는 말레이시아 쪽으로 향하는 긴 다리가 쭉 뻗어 있어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한겨레
Comentár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