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에는 2월에 벚꽃이 핀다. 그 말에 혹해서 2월이 되자마자 일본 남단의 섬 오키나와로 떠난 적이 있다. 지루한 겨울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는 이 계절에 달콤한 솜사탕 같은 벚꽃을 본다면 생의 기쁨이란 걸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하고서.
물론 오키나와는 포근한 날씨를 자랑하며 다정한 햇살을 마구 쏟아내었다. 그런데 의외로 벚꽃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남북으로 길쭉한 섬을 오르내리며 벚꽃 찾기에 열을 올렸으나 어쩌다 드문드문 몇 그루가 보일 뿐, 새하얀 꽃비가 쏟아지는 벚나무길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다른 식물들이 있었다. 열대에 가까운 오키나와에 자생하는 달콤한 향기를 가진 꽃과 고야, 시콰사 같은 새콤쌉쌀한 열매가 달린 나무들과 무성한 관엽수들이었다.
커다란 나무 둥치를 덩굴처럼 감고 있는 아열대의 고무나무들이 단단하고 푸르른 잎사귀를 무성하게 피워 올리며 곧 뜨거워질 태양으로부터,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로부터 섬을 지킬 힘을 잔뜩 비축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본 전역을 화려하게 수놓은 벚나무는 적어도 오키나와에서는 그리 사랑받지 못하는 식물이었다.
오키나와는 ‘류큐’라는 이름의 독립국가로 존속되어오다 에도시대에 일본에 점령되었고 메이지시대에 완전히 복속되었다.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와는 민족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며 오랫동안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유지해왔다.
지금은 일본어를 쓰고 본토의 문화에 동화되었으나 여전히 오키나와 사람이라는 자의식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문학가, 예술가, 그리고 평화활동가들이 이 영역에 있다. 보통 사람들도 ‘니헤데비루(감사합니다)’ 같은 오키나와 방언을 쓰며 본토인을 ‘야마톤츄’라 하고 자신들을 ‘우치난츄’라고 하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이렇게까지 서로 다름을 구별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차별받은 기억 때문이다. 복속 기간 내내 본토에 공물을 보낸 것은 먼 과거의 일이라 하더라도, 태평양전쟁 최악의 전투로 기록된 오키나와 전투가 벌어졌을 때 옥쇄라는 이름으로 자살과 자폭을 강요받았던 그 아픔의 기억이 남아있는 까닭이다. 미군기지 문제도 지금껏 해결되지 못했다. 푸른 바다로 둘러싼 따뜻한 섬에 착 가라앉은 과거의 먼지는 꽤 두터운 것 같았다.
난쿠루나이사, 괜찮아 잘 될 거야
그래서 이 섬은 수호신이 필요했던 것일까? 오키나와를 여행하면서 ‘시사’와 ‘이시간토’를 보지 않고 지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골목마다 집집마다 상점마다 자주 보이고, 한 번 눈에 띄면 계속 찾아보게 되는 매력적인 수호신이다.
시사는 사자를 익살스럽고 귀엽게 표현한 조각상이며, 집을 지키고 악귀를 물리치며 재물을 풍요롭게 해준다. 붉은 기와를 얹은 오키나와 전통가옥에는 흔히 지붕 위에 올라앉은 시사를 만나게 된다. 암수 두 마리를 쌍으로 두는데, 좌측에는 입을 다문 시사가, 우측에는 이빨을 드러낸 시사가 놓인다.
재앙이 들어오지 못하게 입을 다물고 복을 널리 퍼트리려고 입을 벌리고 있다. 또는 재물이 잔뜩 들어오게 입을 벌리고 들어온 재물이 나가지 못하게 입을 다무는 것이라 풀이하기도 한다.
둘 중 어느 쪽이 암컷이고 수컷인지도 이야기마다 다르다. 시사를 올릴 지붕이 마땅치 않은 집은 담장이나 대문 주변에 놓아둔다. 전철역에서도 시사를 보았는데, 출입구 천장 아래 모서리에 시사가 앉아있었다.
이시간토(石敢當)는 길모퉁이에 세워진 돌비석이다. 집 바깥에 존재하는 수많은 미물들이 사람들을 따라다니다가 행여나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오키나와 어디에서든 삼거리 혹은 골목이 여럿 나뉘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이시간토를 발견할 수 있다.
때론 시사 그림도 함께 그려진다. 시사와 이시간토 모두 중국 문화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멀고 먼 시절의 전설들이 오키나와 거리에 여전히 떠돌고 있는 것이다.
섬 곳곳의 귀여운 수호신들은 어떤 이유로 이렇게 간절한 바람과 커다란 불안으로 자리잡게 되었을까? 나는 그 모든 것이 바다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오키나와 해변은 새하얀 산호 위에 코발트블루빛 물결이 잔잔하게 밀려들어 청정함과 청명함이 남달랐다.
그러나 바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깜짝 놀랄 만큼의 굉음이었다. 저 먼 바다가 거대한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것만 같았다.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바다와 맞닿은 열도의 끝자락이 아닌가. 바다는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었으나 자주 태풍이 찾아왔고 바다 건너편의 사람들이 나타나 섬사람의 삶을 산산조각 냈다. 그러니까 바다로부터 지켜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섬의 북쪽으로 올라가자 아직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거친 풍경이 등장했는데, 내가 쉬어갈 풍래장(후라이소)이라는 숙소가 거기에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큰 바위처럼 짙은 회색빛 돌집이었다. 거기서 나는 ‘난쿠루나이사’라는 말을 배웠다.
‘괜찮아, 모두 잘 될 거야’라는 따뜻한 위로의 말이었다. 난쿠루나이사는 시사, 이시간토와 함께 오키나와 하면 떠오르는 정신적인 것들이다. 다정하고 간절한 영혼의 이야기 같은….
커다란 소라껍데기와 조가비와 산호들이 장식처럼 놓인 그곳에서 바닷소리를 벗 삼아 잠이 들었고, 바닷소리에 이끌려 새벽에 바깥으로 나갔다. 눈이 쌓인 듯 새하얀 산호해안을 걸으며 손안에 가득 산호를 담아보았다.
이 소박한 놀이를 하는 동안에도 거대한 저음이 바다로부터 흘러나와 마음에 깊은 울림을 만들었다. 바다는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어떤 경계의 신호를 전하는 것일까?
얼마 전에 일본 심해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수많은 화산재가 오키나와 산호해안으로 밀려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날 바다로부터 들려온 거대한 소리가 내 귓가에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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