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오리의 기름 낀 간 요리…돼지간으로도 비슷한 맛
세계 3대 진미. 이게 근거가 하나도 없는 말이다. 누가 판정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잡스가 유언으로 “내가 가져갈 것은 사랑이 넘쳐나는 기억뿐이다”라고 했다는데 실제로는 “와!”가 전부였다거나 단재 신채호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을 했다는데 전혀 기록이 없어서 가짜라는 판정이 내려진 것과 비슷하다.
◎ 푸아그라, 캐비아, 트러플
“순대는 인류 최초의 제 그릇을 쓴 찜이다!”
그럴 듯하지 않나. 순대는 돼지 자신의 피와 너덜너덜한 부속물을 제 그릇, 그러니까 돼지의 몸에서 나온 창자에 넣어 찌거나 구운 음식이다. 순대는 부정형의 부산물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그릇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진짜다.
“팬이 좋으면 다 좋다. 돈이 있으면 고기가 아니라 먼저 팬을 사라.” 이 말은 어떤가. 사실이다. 고기를 잘 구우려면, 뭔가를 잘 볶아서 요리를 잘하려면 팬이 먼저다. 좋은 팬은 요리의 질을 어느 정도 보장한다. 누가 했을 거 같나. 맞다. 박찬일이다. 요리계의 망언 제조기.
자, 세계 3대 진미. 푸아그라, 캐비아, 트러플을 뜻한다고 한다. 이거, 음식 뉴스 다루는 분이라면 추적해볼 가치가 있다. 왜냐면 일종의 ‘가짜 명언’ 같은 거다. 일단 세계에서 왜 이게 3대인지 근거가 하나도 없다. 특히 푸아그라가 많이 처진다.
캐비아도 뭐 그냥 소금에 절인 생선알 맛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그래서 명언이라 할 동의를 얻지 못한다. 세계 1만 진미라면 넣어줄 수도 있다.
한식도 여기에 들어갈 게 무궁무진하다. 송이버섯, 묵은지, 숭어알, 뭉티기, 냉면…. 서양으로 한정해서 봐도 절대 3대 진미라고 할 수 없다. 트러플은 인정한다. 10대에는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제대로 된 걸 말한다.
요새 한국에서 고급 음식점에서 주는 건 대개 진짜가 아니다. 트러플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절인 여름 트러플을 진짜라고 믿는 이도 있다.
심지어 트러플오일을 ‘트러플에서 짜낸 기름 진액’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요리사 중에도 그렇게 믿는 사람도 있다).
캐비아는? 글쎄다. 맛있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다. 취향의 문제니까. 개인적으로 멋진 요리 재료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남아 있는데, 서양식당에서 캐비아를 내지 않으면 고급이 아니다. 이런 풍조가 있었다. 서양에서든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도 그랬다. 좋다. 한 1천대 진미에 넣어줄 만하다.
문제는 푸아그라다. 푸아그라는 거위간으로 대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빨리 자라서 값이 싼 오리간이 대부분이다. 그저 푸아그라라는 말을 직역하면 ‘살찐 간’일 뿐이다. 살을 찌우지 않으면 거위간이고 오리간이고 그냥 새의 간 맛이다. 푸아그라가 무려 3대 진미에 들어갈 리가 없다는 얘기다.
서양 요리를 하는 요리사들이라면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뭐, 괜찮은 재료지. 맛있어. 그래그래. 이 정도다. 값도 어마어마하지 않다. 1㎏에 10만~20만원이면 산다. 좋은 소고기보다 싸다. 더 싼 것도 많다. 오리털 이불, 한국 사람들도 많이 덮는다. 파카도 마찬가지다.
오리나 거위 털은 헝가리 등에서 엄청나게 생산한다. 대체로 오리다. 빨리 자라니까. 그 엄청난 양의 털을 만들자면 그만큼 오리도 많이 길러야 한다. 털을 얻기 위해 길렀는데 고기가 나온다. 어라? 간도 있지 않아? 이렇게 해서 저렴한 푸아그라가 나온다.
일부러 푸아그라 특유의 급양 방식으로 과식을 시키지는 않으니, 기름지게 부은 간은 아니다. 맛이 별로다. 그 많은 오리털용 오리의 간이 어디로 가겠나. 결국 푸아그라처럼 만들어져 유통된다. 이걸 가짜라고는 할 수 없다. 저렴한 오리간일 뿐이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푸아그라는 기름이다. 살찐 게 거의 기름 성분이다. 많이 먹고 운동을 안 해서 지방간이 된 거다(엄밀히 말하면 많이 먹이고 운동을 시키지 않은 것이다). 푸아그라는 굽기가 꽤 까다롭다.
프랑스 지역 전통 요리에 푸아그라 구이가 있다. 팬에 올려 앞뒤로 바삭하게 지진다. 달콤한 과일이나 와인 농축액과 판도로(버터를 많이 넣어 구운 빵)를 곁들여서 먹는 게 클래식이다. 맛있다. 물론 내장 특유의 향과 맛이 있어서 못 먹는 사람도 있다.
인터넷에서 간편하게 푸아그라를 판다는 걸 모르는 분들도 많으리라. 주로 프랑스 가공제품이다. ‘홀’이라고 부르는, 간을 통째로 찐 것도 팔린다. 대개는 스프레드처럼 가공된 거다. 빵에 바르는 식으로 바로 요리할 수 있게 편리하게 만든 제품이다.
그다지 비싸지도 않다. 100g에 만원 정도면 산다. 푸아그라 레이어라고 하는 제품도 있다. 스프레드가 아니라 건더기 형태다. 잘라서 스테이크에 얹어내기 좋다. 로시니 스테이크라는 꽤 올드한 요리가 있는데, 소 안심구이에 구운 푸아그라를 얹은 것이다. 집에서 로시니 스테이크를 만들 수 있다!
아 참, 그래서 이 3대 진미설은 누가 만든 말일까. 아마도 일본 사람(언론)일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세계 3대, 세계 최대 참 좋아한다. 콤플렉스에서 나온 것 같다. 아시아 국가인데 세계 주류에 끼고 싶어 하는 것. 이런 심리가 결국 전쟁을 일으켰다.
세계 최대, 3대가 아니면 최소한 동양 최대다. 한국이 결국 이런 문화를 다 갖다 쓴다. 서울 3대 떡볶이, 서울 3대 순대국... 어쨌든 트러플, 푸아그라, 캐비아. 속칭 3대 진미라는 설이 있다.
◎ 집에서 만들어 먹는 세계의 진미
푸아그라로 한정하면 하여튼 한 1천대 진미는 될 가능성이 있다. 딱 그 정도다. 나는 간 요리를 좋아한다. 특히 닭간 요리를 좋아하는데 한국에서는 살 수 없다. 돼지도 순대보다 간이다.
가끔 소간이나 돼지간을 사다가 삶아서도 먹는다. 마장동에서 살 수 있다. 잘라서도 판다. 집에 와서 잘게 주사위 모양으로 잘라서 양파와 같이 버터에 볶는다. 믹서로 윙윙 갈아서 빵에 바르면 최고다. 서양에서 가장 흔한 요리 중의 하나다. 집에서 쉽게 해볼 수도 있다.
먼저 순대집에서 삶은 간(생간은 안 파니까)을 넉넉히 산다. 또는 간만 산다. 잘게 다진다. 소금, 버터 몇 숟갈과 달갈 노른자를 넣고 믹서에 함께 간다. 가루 치즈를 넣어도 좋다. 트러플오일이 있다? 함께 넣는다. 너무 뻑뻑해서 안 갈아지면 사이다나 물, 여차하면 기호에 따라 마요네즈를 넣어서 조절한다.
믹서에서 꺼내 마지막에 후추를 듬뿍 뿌리고 다진 파를 섞는다. 내가 창조한(?) 돼지간 푸아그라다. 무화과 잼이나 발사믹 글레이즈를 뿌려서 빵이나 크래커를 곁들여 맥주나 와인 안주 하면 된다. 세계 5천대 진미는 된다고 자신한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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