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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Weekly Korea EDIT

[백두산 기행⑦] 시인 백석白石이 양을 치던 마을은 그 어디쯤일까 1



■ 끝없이 이어지는 산줄기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나타났다. 산줄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시간의 흐름이 멈춰 버린 듯했다.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았고, 심대한 자연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처럼 느껴졌다.

햇빛에 반짝이는 도로를 따라 뚫린 하늘은 맑았고, 산새들이 바람결을 따라 날아다녔다. 9월 중순이지만 가을의 빛이 흠뻑 물들어 있었다.

맑은 공기 속에서는 배가 쉬 고파왔다. 배가 고프다 싶으면 개울가 그늘에서 점심을 먹었고, 다리가 아프다 싶으면 도로 옆에 주저앉아 쉬었다. 해가 짧아지면서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머지 않은 곳에 밀영의 표지판이 서 있었다.

해가 기울면 숲은 빠르게 어두워졌고, 검게 변해갔다. 숲속에서 냉기가 끼쳐왔다. 우리는 밀영의 숙영지에서 텐트를 치고 밥을 지어 먹었고, 모닥불을 피워 놓고 하루를 뒤돌아보았다. 차가운 이슬이 내리는 숲에서 약초, 나물과 온갖 꽃향기가 끼쳐왔다. 신비로운 숲의 향기가 모닥불 주위를 감쌌다. 하루의 피로가 씻은 듯이 날아갔다.

그렇게 간백산, 곰산, 압록강, 백두산, 선오산에 퍼져 있는 크고 작은 밀영들을 거쳤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나름의 특색이 있었고, 전해 내려오는 전설들이 있었다.

특히 다섯 선녀가 놀았다는 선오산(仙五山) 밀영과 청봉(靑峰) 항일투쟁숙영지는 어떤 경우에도 유리한 위치에서 적들을 물리칠 수 있고, 숲이 울창하여 부대가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작은 능선들이 뻗어 있어 어느 방향으로든지 이동할 수 있는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두산 밀영의 넓은 부지에는 현대식 시설들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다. 전국에서 답사를 오는 학생들이나 주민들이 묵을 숙소, 회관과 사진관이며 지붕이 뾰족한 식당, 관리 건물들이 계곡을 따라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펜션 마을 같았다. 도로 모퉁이에 정성 들여 가꾼 꽃밭 위로 잠자리들이 날아다녔다. 물을 때마다 너무 성실하게 대답해 주는 강사들에게 미안해서 꽃 이름을 묻지 않기로 했다.

■ 리명수폭포(鯉明水瀑布)

건창항일투쟁숙영지를 지나자 도로와 산세가 누긋해졌다. 완만하게 펼쳐지는 내리막 능선에 수풀이 파도처럼 출렁거렸고, 덤불 속에서 뛰어나온 짐승들이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갔다. 산허리의 옥수수밭 아랫길에서 수레와 마주쳤다. 중년의 농부가 황소의 고삐를 잡았고, 수레에는 곡식이 실려 있었다. 열 살 남짓한 아이들이 뒤따라왔다. 아이들은 수줍어하면서도 피하지는 않았다.


자기들끼리 눈을 마주치며 활짝 웃는 모습이 그렇게 순박해 보일 수가 없었다. 속세에 오염되지 않은 것은 공기뿐이 아니었다. 그 공기로 호흡하는 사람들도 깨끗하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수풀 너머 언덕 위에는 이깔나무들이 곧게 서 있었고, 내가 걸어갈 길이 언덕 옆으로 해서 산 뒤편으로 구부러졌다.

언제나처럼 우리 일행은 한 줄로 늘어서서 걷고 있었다.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눈앞이 탁 트이면서 꽤 넓은 연못이 나타났다. 연못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는 화려한 정자가 서 있었고, 정자 아래까지는 난간이 쳐져 있었다. 난간 아래는 꽤 넓은 바위벽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바위벽을 바라보았다. 물길이 없는 바위벽에서 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니 새하얀 물줄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리명수폭포(鯉明水瀑布)였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안내원이 우리를 맞았다. 정자에서는 연못과 주변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난간 아래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천지에서 땅속으로 스며든 물이 산줄기를 흐르고 흘러서 이곳 바위틈으로 솟아 나오는 것이라고, 안내원이 알려주었다.

백두산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으로 알려진 명승지 중의 하나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가끔은 높은 압력을 받아 하늘로 솟구쳐 오르기도 하며 수만 갈래로 흩뿌려져 물안개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겨울에는 벼랑 꼭대기에 매달린 고드름과 고드름 밑에서 자란 얼음기둥, 그리고 주위의 나뭇가지에 끼는 하얀 성에가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고 말했다. 나는 정자 아래로 내려갔다. 바위벽을 더듬자 손바닥에 물이 솟아나는 감촉이 느껴졌고, 손바닥을 입에 대자 시원하고 달콤한 천지의 물맛이 되살아났다. 과연 백두산이었다.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천지의 물을 마시게 해주는, 천지를 보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에게 물맛이나마 보도록 마음을 쓰는 백두산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제임스 안(네이쳐코리아 대표)


※ 백두산 여행에 관하여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네이쳐코리아(www.naturekorea.org) 또는 위클리코

리아(weeklykorea.edit@gmail.com)로 연락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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