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코미디언으로 성공해 한국에 처음으로 미국식 토크쇼 형태의 코미디를 선보였던 자니윤(한국명 윤종승)씨가 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별세했다. 향년 84세.
1936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59년 방송인으로 데뷔했으나 1962년 해군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원래 전공은 성악이었으나 클래식으로 먹고 살기 어렵다고 판단, 뉴욕으로 옮겨 리 스트라스버그 액터스 스쿨에서 연기를, 모던 재즈 무용학교에서 춤과 모던 재즈를 공부했다. 이후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겪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나 인종차별, 정치 등에 대한 풍자, 성적 농담 등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1977년 NBC ‘투나잇 쇼’에 동양인 최초로 출연하면서 미국의 전국구 스타로 거듭났다. NBC는 고인과 전속계약을 맺고 ‘자니윤 스페셜 쇼’를 선보이기도 했다.
고인은 영화배우이기도 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들인 한국계 영화배우 필립 안과 함께 TV 시리즈 ‘쿵푸’에 단역으로 나온 것을 시작으로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M*A*S*H’, ‘코작’ 등을 거쳐 1982년 저예산 코미디 영화 ‘내 이름은 브루스(They Call Me Bruce)’에선 주인공을 연기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미국식 토크쇼 형식을 빌린 ‘자니윤쇼’를 진행했다. ‘자니윤쇼’는 이후 등장하는 ‘주병진 쇼’ ‘서세원 쇼’에서부터 최근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에 이르기까지 한국 토크쇼 프로그램에 큰 영향을 줬다.
하지만 한국에서 방송 생활은 쉽지 않았다. ‘자니윤쇼’는 1년 만에 폐지됐고, SBS로 자리를 옮겨 진행한 ‘자니윤, 이야기쇼’ 또한 1년 만에 폐지됐다. 수위 높은 성적 유머와 정치 풍자 등이 문제였다.
훗날 고인은 “당시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었고 방송에서도 제한된 것들이 많아 열심히 방송해도 편집 당하기 일쑤였다”며 “나는 정치, 섹시 코미디를 즐겼는데 제재를 많이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던 고인은 1999년 예순넷의 나이에 18세 연하의 재미사업가 줄리아 리와 결혼했으나 2010년 이혼했다.
고인은 정치권과의 인연도 있었다. 2007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미국 LA를 찾았을 때 ‘박근혜 후원회 모임’ 회장이었다. 2012년 대선 때는 아예 박근혜 당시 후보의 재외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이었다. 그 덕에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내정됐으나,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에 감사에 그쳤다.
고인은 2016년 감사 임기 종료를 앞두고 건강이 악화, 미국으로 건너가 요양 생활을 했다. 지난 4일부터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신은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 메디컬센터에 기증키로 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러질 예정이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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