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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WeeklyKorea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헛심을 빼며 -옹기-


아파트로 이사하며 남편과 전쟁을 치렀다. 지난 해 가을 고추장을 담그자 남편은 일을 만들어서 한다며 항아리를 내다버리겠다는 엄포까지 놓았다.


화초 가꾸기를 좋아하는 남편이다. 하지만 이곳 아파트로 이사하며 화단에 화초를 심겠다는 꿈을 남편은 접게 되었다. 아파트 화단을 항아리들이 전부 점령했기 때문이다.


다루기 힘들다, 쉽게 깨진다는 이유로 남들은 장독대를 허물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결혼한 이래로 옹기들을 잔뜩 끌어안고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 집 장독대의 항아리들은 몇 십 년 손때 묻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다른 플라스틱 그릇들은 이사할 때마다 슬쩍 쓰레기장에 떨궈 놓았으나 항아리만큼은 깨질세라 신주 모시듯 겹겹이 싸안고 왔다.


옹기그릇이 간수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뒤울안에 장독대가 있던 주택과는 달리 아파트 생활에선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집어던지고 아무렇게나 뒹굴려도 쉽게 깨지지 않는 스텐 그릇이나 플라스틱 그릇들은 왠지 정이 안 간다.


처음 샀을 땐 물오른 기생 낯바닥마냥 산뜻 하지만 어떤 음식이든 곰삭여 주는 옹기의 깊은 품을 흉내도 못 낸다. 그래서인지 옹기는 얼굴에 분단장 할 겨를 없는 투박한 조강지처의 모습처럼 보면 볼수록 정겹다.


제 아무리 분칠 잘한 플라스틱 그릇이련만 옹기의 깊은 맛을 어찌 따르랴. 기생이 퇴기되기는 잠깐 세월 아니던가. 하지만 어려움이 닥칠 때 조강지처의 진가를 알아보듯 옹기는 자신이 품은 음식을 발효 시키는데 몸을 사리지 않는다.


옹기는 우리 땅 지천으로 널린 찰흙으로 빚은 그릇이다. 그럼에도 뜯어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 물건이다. 목은 좁고, 배는 볼록하며 아랫도리는 날씬한 맵시다. 그 모양새를 찬찬히 바라보면 너그럽고 인자한 어머니를 뵙는 듯 하고, 누이의 정스런 모습을 대하는 듯하다.


어디 이뿐인가. 제 잘났다고 뽐내는 법 없이 모양새가 고만고만하다. 그럼에도 눈여겨보면 저마다 다른 모양새를 지녔으니…. 이는 옹기장이의 솜씨에 따라 조금씩 그 모양이 다르게 빚어진 탓일 것이다. 은은한 황갈색의 배가 불룩한 옹기를 바라보노라면 마음마저 훈훈해진다.


우리 민족의 심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듯하여 왠지 정이 쏠린다. 우리 조상들이 옹기의 색깔을 청색이나 흰빛을 피해 황갈색을 택한 것은 왜 일까? 아마도 따뜻함을 좇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차갑고 냉랭하면 정이 안 간다. 사람도 남의 슬픔, 아픔도 함께 나눌 줄 아는 사람에게 더 정이 가지 않던가.


생명을 지닌 옹기이다. 제 몸 속에 습기를 내뿜기도 하고 몸속이 건조하면 숨을 들이마셔 습기를 조절한다. 이렇듯 스스로 제 몸 상태를 알아서 조절하는 옹기이다. 이런 옹기를 저버리고 우린 비싼 석유에서 뽑아낸 원료로 만든 플라스틱 그릇에 익숙해 있다.


불현듯 어린 날 우리 집 장독대가 몹시도 그립다. 온갖 종류의 항아리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던 장독대는 단연 옹기들이 위세를 떨치던 곳이었다. 그 이름도 정겨운 간장독• 김칫독• 소금 독• 된장 독• 떡 시루•소줏고리• 대독• 자배기• 방구리• 옹배기• 소래기• 방퉁이 •알항아리 등등의 옹기들이 놓인 곳이었다.


그 속에 감춰진 음식들이 우리들을 살찌우고 자라게 했다. 어찌 살찌고 자란 게 몸뿐이랴. 옹기 속에서 발효된 음식을 먹으며 인내와 정성도 익혀 본성을 선하게 지녔었다. 들 숨 날 숨 쉬는 항아리 속에 온갖 장류와 저장식품을 담그면서 은근과 끈기를 배웠었다.


하지만 우리들은 요즈음 잃은 게 너무 많다. 생활 속에서 옹기를 잃었고 기다림을 잃었다. 또한 애틋한 그리움도 상실했다. 도깨비 방망이인 돈만 좇다보니 헛된 물욕에 젖어 옛것을 숭상하는 마음을 잃었다. 우리 생활에 ‘감초’ 노릇을 하던 옛 정서를 잃고 지금 우린 그것을 다른 곳에서 찾느라 헛심을 빼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옛 물건에 얽힌 추억과 효용 가치 등을 사유하여` 테마로 쓴 글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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