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박이장 한 구석에 잔뜩 웅크린 목화솜 이불이다. 이것을 바라보노라니 친정어머니 생각에 콧날이 시큰하다. 애지중지 키운 딸자식을 타인 가문에 보내느라 만감이 교차했을 어머니다.
이 때 이불을 지으며 눈시울을 적셨을 어머니.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간수하기 불편한 무거운 솜이불을 애물단지로 천대하다가도 선뜻 내다버리지 못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혼수 준비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요즘이야 돈만 쥐고 나가면 흔한 게 물건이다. 하지만 수십 년 전만 하여도 혼수 준비로 집안에서 이불을 짓는 일이 허다했다. 그 때 다듬이도 일조를 하기 예사였다.
집안에 다듬이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게 어찌 혼수 준비에만 국한 되랴. 어린 날 우리 가족들 옷을 매만질 때도 어머닌 다듬이를 곧잘 사용 했다. 달빛이 휘황한 어느 늦가을 밤, 무성한 풀벌레 소리와 함께 대청마루에서 들려오는 리드미컬한 다듬이 소리에 나는 문득 눈을 떴다.
이슥한 밤 어머닌 호롱불도 밝히지 않은 채 다듬이질을 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며 대청마루에 나가보니 희미하게 비춘 한 줄기 달빛 아래 드러난 옷감은 연분홍, 초록빛 쪽물이 든 광목 이불 몸판이었다.
어머니 다듬이질은 밤하늘 달이 이울 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 다음날 어머닌 온종일 이불을 지었다. 그렇게 공력을 들여 지은 이불 한 채를 어머닌 큰 보자기에 쌓아 머리에 이고 시오리 길을 걸어 아버지가 새로 차린 살림집에 갖다 주었다. 날씨가 서늘해지자 아버지와 새살림을 급히 차린 그 여자를 염려한 어머니 배려였다.
무엇보다 아이를 낳은 산모를 걱정한 측은지심에서 우러난 일이기도 했다. 허나 아무리 조강지처의 마음이 하해河海와 같다하지만 부적절한 관계인 아버지와 그녀가 함께 덮을 금침을 만드는 그 심정이 오죽했으랴. 그래서인지 어머닌 그 이불감을 다듬이질 하는 날 밤, 여느 때보다 방망이에 더욱 힘을 가해 그 소리가 마치 지축을 뒤흔드는 듯 온 집안에 울려 퍼졌다.
그 다음날 대청마루에 이불 몸판을 펼치고 목화솜을 놓으며 어머닌 땅이 꺼져라 한숨을 토해내는 모습도 보았다. 돌이켜보니 그 때 그 이불이 예사 이불이 아닌 듯하다. 어머닌 아버지와 그녀가 덮을 이불 몸판과 깃을 다듬이질 할 때 옷감 주름만 편 게 아니었다.
아마도 그것을 다듬이질 하며 마음 속 갈피갈피마다 깊게 골이 패인 당신 회한에 대한 구김살도 함께 펴려고 애썼으리라. 지아비를 딴 여자 품에 빼앗긴 여자로서 피맺힌 한을 다듬이 방망이 소리에 실어 허공으로 멀리 보내려는 마음 또한 간절했을 것이다.
어찌 이 한 뿐이랴. 남편 없는 궁색한 집안 살림살이 시름도 다듬이 소리와 함께 멀리멀리 사라지길 염원 했는지도 모른다. 여인으로서 한과 염원이 한껏 서린 그 이불을 받아든 아버진 어머니에게 뻔뻔스럽게도 남편으로선 차마 말할 수 없는 부탁을 또 해왔다. 바느질 솜씨가 뛰어난 어머니 손을 빌려 이번엔 새 여자가 낳은 갓난아기 이불 한 채를 지어달라는 요구였다.
어머닌 밤을 새워 갓난아기가 덮을 이불 한 채를 지었다. 그 때 어인일로 어머닌 다듬이질을 안 하고 이불 몸판과 깃을 숯불 다리미로 정성껏 다렸다. 그런 어머니 행동이 궁금해 연유를 묻자 어머닌, “아기가 덮을 이불을 어찌 다듬이 방망이로 두들겨 패서 만들겠느냐? 어린 게 무슨 죄가 있겠느냐? 모두 어른들 잘못이지.” 라는 이 말씀은 나로 하여금 아버지가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를 어린 나이에 이미 어렴풋이나마 짐작케 하는 계기가 되고도 남음 있었다.
자식들이 성장한 후 어머닌 당신 손톱 여물을 썰어 모은 돈으로 혼수장만을 해줄 때가 가장 행복 했노라고 지금도 회상하곤 한다. 특히 딸자식들 혼수인 이불을 마련하느라 다듬이질을 하노라면 그동안 겪은 질곡의 삶, 마음 고생시킨 아버지에 대한 애증도 모두 허공으로 사라져 더욱 다듬이질 하는 두 팔에 힘이 났었다고 하였다.
그래서인가. 어쩐지 어머니가 만들어준 이부자리를 펼칠 때마다 하늘의 별도 그것에 우수수 쏟아지고 달빛도 교교히 머무는 듯하여 우리 내외는 늘 황홀한 밤이 되곤 한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옛 물건에 얽힌 추억과 효용 가치 등을 사유하여 테마로 쓴 글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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