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교 마을 뒷산의 한 무덤 앞에는/ 무덤 모양 동그랗게 고봉으로 담은 / 흰밥 한 그릇이 놓여있었다/ 지난해 흉년에 굶어죽은 이의 / 무덤이었다.
위 시는 시인 김영석 작 「밥과 무덤」이라는 시이다. 지난 날 가난하던 시절엔 배곯아 죽는 일도 흔했었다. 배가 고파 죽을 지경까지는 필자 또한 겪은 일이기도 하다.
어린 날 아버지의 잦은 바람기로 인해 우리 가족은 살던 집마저 빛 잔치에 의한 희생물이 돼야했다. 그로인해 졸지에 갈 곳 잃은 우리들은 당분간 외가에서 자랐다. 필자가 초등학교 입학한지 불과 몇 달 안돼서 일이다. 그 때 외가는 한 분 뿐인 외삼촌이 결혼을 하게 돼 시골에서 소읍으로 나왔다.
우리 형제들은 외가에서 외숙모 손에 눈칫밥을 얻어먹었다. 마침 당시 외가도 외할아버지께서 만석꾼 재산을 다 털어먹은 터라 생활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더구나 외숙모는 대학 다니는 남동생까지 외가로 데려와 그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께선 바느질집에서 한복을 지어서 힘겹게 번 돈으로 우리들 식량을 대줬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끼니 때 우리들은 멀건 죽으로 연명해야 했다. 어느 땐 끼니도 거른 채 학교 가기 일쑤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어머니가 사준 식량을 외숙모는 몰래 내다팔아 딴 주머니를 찼던 것이다.
어느 날 외가에서 낮잠을 잘 때 일이다. 외숙모는 큰 바가지에 쌀을 퍼 담아 장롱 속에 감추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철없던 나는 그 일을 외삼촌한테 일렀다. 외삼촌이 부부 싸움을 할 때 그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후로 우리들에게 가해지는 외숙모의 구박은 그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녹이 시퍼렇게 슬은 작은 놋그릇에 주걱으로 밥을 한술 슬쩍 얹어 퍼서 눈속임을 하기도 했다.
그 때 어린 맘에도 그런 외숙모가 참으로 야속했다. 밥을 먹으려고 숟가락질을 하노라면 놋그릇 위에 가까스로 얹혔던 밥 한술이 그릇 바닥으로 털썩 내려앉곤 했다. 간신히 목숨부지만 했던 필자는 눈이 무릎까지 쌓이던 어느 겨울날, 마을에서 2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를 걸어서 등교 하다가 눈 위에 쓰러진 적이 있었다.
아침밥은 물론 전 날 저녁밥도 굶은 상태였다. 허기에 의한 탈진이었다. 요즘도 그 시절 필자의 밥그릇이었던 놋그릇을 바라볼 때마다 어린 날 일들이 떠올라서 가슴이 못내 저리다. 당시 필자 밥그릇은 요즘 밥 공기만한 작은 그릇이다.
그 작은 공간을 채울 밥을 잃은 우리 형제들은 눈칫밥과 허기에 시달리며 잠시나마 어린 날을 보내야 했다. 훗날 이를 안 어머니는 어린것들의 창자를 주리게 한 외숙모이련만 원망 한마디 하지 않았다. 오히려 형편 어려운 친정에 자식들을 맡긴 것을 몹시 죄스러워 했다.
1980년 대 노동 운동의 상징이던 박노해 씨는 오죽하면 ‘밥줄이 하늘’이라고 했을까. 그는 “ 우리 세 식구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도 하늘이요,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도 하늘”이라고 했다.
가난 속에 어린 날을 보낸 나 또한 ‘밥’이 하늘이나 진배없었다. 한창 성장기에 배를 주리고 살았으니 그 당시 가장 절실한 소원은 따뜻한 쌀밥 한 공기 실컷 먹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 하늘을 잃고 말았다.
다시금 놋그릇을 찬찬히 바라본다. 하늘을 담지 못했던 지난날의 필자 밥그릇이 이제는 세월의 이끼인 양 푸른 녹을 뒤집어쓰고 있다. 놋그릇은 구리와 주석이 주성분이다. 구리와 주석의 78:22의 비율로 불 속에서 완전하게 녹아져 틀에 성형을 시켜 만든다. 이때 쇠망치로 두들기고 불에 달구어지기를 반복하여 방짜로 태어난다. 담금질을 거듭한 끝에 제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다.
옛 여인들은 자칫 잘못 간수하면 푸른 녹이 스는 놋그릇을 지푸라기 수세미에 기와 가루를 묻혀 반들반들 윤이 나도록 닦곤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 사는 일에 골몰하긴 매한가지 아닌가. 목숨 줄인 밥과 음식을 담았던 놋그릇이기에 무엇보다 소중하였으리라.
지난날 나의 밥그릇이 담지 못했던 하늘을 나는 어른이 돼서야 가슴에 한껏 품게 됐다. 쌀 한 톨도 소중히 여겨 우리네 농산물인 쌀을 목숨처럼 귀히 여긴다. 그래서 요즘엔 우리 집을 찾는 손님들에게 소박한 밥상을 차려주기 위해 끼니때마다 놋그릇에 밥주걱으로 하늘을 퍼 담는 일을 몹시 즐거워하고 있다.
이젠 집들이나 개업 집을 찾아갈 때 우리의 목숨 줄인 쌀을 들고 가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또한 그 어떤 선물보다 누군가 내게 쌀을 선물해 줄 때가 제일 기쁘다면 쌀 사랑이 지나칠까? 아직도 필자에게 ‘밥’은 하늘이라면 이 또한 과언일까? 오늘도 나는 놋그릇에 수북이 담긴 쌀밥으로 마음의 허기까지 채워서인지 세상사 그 무엇도 부러울 게 없는 듯 하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옛 물건에 얽힌 추억과 효용 가치 등을 사유하여` 테마로 쓴 글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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