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식이 또는 촌 여자. 이게 나의 별명이다. 어쩌다 남 앞에 나의 별명을 꺼내면 어떤 이는 나의 외모와 걸맞지 않다며 고개를 갸웃한다.
이런 별명들이 내게 주어진 까닭은 다른 데 없다. 요즘은 너도나도 다이어트에 열성이다. 이런 시대에 나는 다이어트의 큰 적이라는 탄수화물 덩어리인 밥을 너무나 좋아한다. 여기서 ‘밥을 좋아 한다’라는 것은 즐겨먹는다는 의미를 넘어 많이 먹는다는 뜻도 있다.
친목 모임이 주로 저녁 시간에 이루어진다. 그런 자리서 대부분 여성 회원들은 식사가 나오면 밥공기 뚜껑에 공기 밥 절반을 썩 덜어놓는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국이 나오면 국 한 그릇 다 비우고 밥 한 공기도 거뜬히 먹어치운다. 이런 나를 곁에서 지켜본 지인들이 밥을 맛있게 먹는다 하여 내게 붙여준 별명이 바로 밥식이다.
사실 밥 한공기라고 해야 몇 숟가락 뜨면 없다. 요즘 식당 밥공기 크기가 옛날 밥사발 절반도 안 되잖은가. 아무튼 나는 끼니때 마다 밥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먹고, 그만큼 일도 열심히 한다. 집안일만 해도 그렇다. 너른 집안을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걸레를 깨끗이 빨아 구석구석 닦는다.
비록 아파트에 살지만 해마다 된장, 고추장, 간장, 청국장 등을 담가 항아리에 담아놓고 그것을 수시로 열어보고 장독도 자주 닦곤 한다. 빨래도 세탁기에 돌리지 않고 가급적 손빨래를 한다.
이렇게 부지런을 떨며 한시도 몸을 놀리지 않고 움직이고 집안일을 만들어서 하는 날 보고 친구들은 촌 여자처럼 산다고 빈정거린다. 집안일에 매달려 스스로 신세를 볶으며 산다고 나무란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이런 삶이 좋다. 밥 잘 먹고 건강하여 힘닿는 데까지 몸을 움직이는 삶의 태도야말로 가장 바람직 한 생활이라는 나의 평소 생각 때문이다.
삶의 원동력은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집의 소박한 밥상에서 비롯된다. 직접 담근 장아찌, 된장, 고추장으로 식단을 꾸민 식탁에서 나는 나를 지탱 하는 기(氣)를 흠뻑 머금으며 살고 있다.
주위 사람들은 이런 나를 시대에 뒤떨어지게 산다고 비웃을지 모르나 우리 조상님들이 즐겨먹던 장류와 세끼 쌀밥이야말로 가장 최고의 보약이라고 생각한다.
하나 쌀의 주성분인 탄수화물이 다이어트의 적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인지 현대는 밥을 많이 먹는 것을 꺼리는 세상이 됐 다. 예전엔 밥 잘 먹는 사람이 매사에 충실하다고 여겼으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생명줄인 쌀을 천대하다보니 잃어진 게 참으로 많다.
나의 어린 날만 해도 해마다 섣달그믐 자정부터 정월 초하룻날 아침까지 조리장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오." 하는 말을 목청껏 외친 뒤 복조리를 마당에 던지곤 돌아섰다. 어머닌 그들이 던지고 간 복조리를 갈퀴와 함께 정지 문 앞에 걸어두었다.
복을 갈퀴로 조리 속에 긁어모아 새해에도 집안에 만복이 일기를 소원하는 바람에서였다. 요즘 쌀이야 돌, 뉘까지 가려져 말끔히 포장돼 나온다. 하지만 그 시절엔 쌀 속에 뉘나, 돌이 많이 섞여 그것을 가려내는 조리는 주방 기구의 필수품이었다. 조리는 대나무, 싸리 가지의 속대를 엮어 만들었다.
돌아오는 울 음력설엔 나의 가슴에 앙증맞은 복조리 한 개 들여놓고 그것에 새해 소망을 담아두어야 할까보다. 올 한 해도 건강한 모습의 촌 여자로 살길 그것을 통해 염원해 보련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옛 물건에 얽힌 추억과 효용 가치 등을 사유하여` 테마로 쓴 글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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