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몸뚱이는 색기色氣 덩어리다. 요염한 살 내음, 갖은 교태로 남정네의 육신을 달구다 못하여 가슴에 한껏 뜨거운 불기둥까지 안겨준다.
남편도 그녀 앞에선 정신이 혼미해지나보다. 마치 무릉도원에라도 들어간 듯 몽롱한 눈빛이다. 꼬리가 아홉 달린 구미호의 간교함도 그녀 앞에선 맥을 못 춘다.
나도 그녀를 가까이 한 적이 있다. 이 여인을 내 안에 굴복 시키겠다는 의지에서 다가갔다. 이 때 그녀의 감미로움은 미세한 내 혈관을 타고 온 전신에 퍼져 나로 하여금 하늘을 돈짝만큼 보이게 하였다.
하지만 남편처럼 매일 밤 그녀 육신을 더듬으며 가슴에 품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녀는 점차 남편 가슴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이젠 마누라 없인 살아도 그녀가 곁에 없으면 하룻밤도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지나치리만치 그녀에게 집착 하는 듯하다.
그녀는 남편의 애첩이다. 뜨거운 입김으로 사람 가슴에 불을 붙이면서도 자신은 절대적 냉랭함을 즐긴다. 그 얼음장처럼 싸늘함이 인간 가슴에 불을 지피는 원천임을 남편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정이라곤 눈곱만큼도 느낄 수 없는 그녀이지만 때론 덕德을 갖춘 면도 없지 않다.
삶에 지쳐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사람들에게 잠시잠깐의 순간이지만 희열의 끈을 던져 주지 않던가. 그리하여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하기도 한다. 그녀를 가슴에 품은 사람치고 진솔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 칸트조차도 그녀를 품은 자는 솔직해지고 친구 간의 우정이 샘솟는다 하였다.
삶의 윤활이며 정의 촉진제인 매력에 반하여 오늘도 사람들은 그 끈을 부여잡으려 그녀를 만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약속을 믿지는 말아야 한다. 순간 희열의 끈을 손에 쥐게 하는 한편, 그녀에게 매료되면 자칫 패가망신의 지름길로 접어들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터득하고 그 심리를 간파함이 지그문트 프로이드를 능가한다. 남편도 어찌 보면 나약한 인간이기에 그녀 힘에 의존함이 당연 하리라. 그녀가 악마가 지닌 피며, 죄악의 보모保姆인 것을 남편이 어찌 알아채랴.
그녀를 품은 자의 나락 끝에 선 모습을 삶을 통해 누누이 보아왔다. 지혜를 상실하고, 분노로 타인과 싸우며, 질병으로 사망하는 불행을 낳는 게 그것이다. 그래 신학자 어거스틴은 그녀를 경계하는 의미로 , “인간을 매혹하는 악마요, 맛이 있는 독약이며, 기분 좋은 죄악이다.” 라고 갈파했다.
밤마다 그녀와 잠자리를 하는 남편에게 그녀를 가차 없이 버릴 것을 종용하였다. 남편은 그런 나의 성화에, “그러마.” 한 약속을 여태껏 지킨 바가 없다. 어느 땐 오히려 닦달하는 게 야속한 듯 그는 반기를 들고 대항하기도 한다.
“당신이 이 여인만큼 나를 위해 헌신했어? 밤마다 나를 쾌락에 젖게 해 준적 있느냐고. 가장으로서의 고통, 한 남자로서의 번민을 이 여인처럼 어루만져 준 적이 있어? 이젠 우울증이니 뭐니 하며 심지어 내가 코고는 소리조차 듣기 싫다고 내 품에서 벗어나 각방까지 쓰는 당신이잖아.”
남편의 분노에 찬 질타에 그만 입을 다물어야 했다. 심지어는 그의 빗발치는 항의에 깊숙이 감추었던 그녀를 마지못해 다시 대령시키기도 했다.
가장 슬픈 건 밤마다 남편 앞에 모시기 위해 그녀를 분단장 시키는 일이다. 그녀를 돋보이게 하려면 준비할게 많다. 남편의 입맛에 맞게 안주 요리도 해야 하고 그녀의 몸을 뉘일 금침도 준비해야 한다. 아무리 조강지처는 수더분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런 일은 정말 참는데 한계를 느낄 만큼 마음의 고통이 크다.
밤마다 그녀와 동침하는 남편의 행태를 더 이상 두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해서 어느 날 그녀 몸이 담긴 항아리를 힘껏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이 때 그녀 입술에서 단말마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조금치도 연민을 느끼지 않았다.
비록 나이는 젊지 않아도 나도 여자다. 그동안 그녀에게 느낀 질투, 비애를 생각하면 오염된 물로 그녀를 희석 시키고도 싶다. 그러면 그녀의 요염한 자태와 달콤한 입술도, 또한 방종放縱과 광기狂氣도 모두 그녀 몸을 벗어날지 모르잖은가.
그녀를 가까이 한 대가로 남정네들은 오장육부를 손상할 것이다. 그녀의 유혹에 홀려 때론 바보가 되기도 했다. 그래 이제라도 그녀의 황홀한 자태로부터 남편을 보호하기로 작정을 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옛 물건에 얽힌 추억과 효용 가치 등을 사유하여 테마로 쓴 글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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