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철만 되면 아파트 단지엔 멀쩡한 가구들이 버려진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예전 같으면 수십 년을 쓰고도 남을 물건이 태반이다. 아파트 쓰레기장에 버려진 장롱, 침대, 책상, 의자, 그릇 등을 볼 때마다 참으로 아까운 자원이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한때 그런 물건들 품귀는 생활의 궁색함은 물론 사람이 물질에 의해 저울질당하는 굴욕을 겪게 하기도 했었다. 생각이 이에 이르자 더욱 그 물건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그런 삐뚤어진 사고思考가 아직도 이 사회에 잔존해 있다고 생각하자 안타까움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절절하던 남녀의 사랑이 결혼을 앞두고 한낱 혼수 문제로 금이 가기도 하잖은가. 어디 그뿐이랴. 결혼이 무슨 흥정인가. 혼수가 눈에 차지 않는다 하여 자신의 아내는 물론 장모한테까지 폭력을 휘두른 어느 의사의 파렴치한 행동이 신문을 장식하기도 했었다.
어찌 보면 거지 본성이나 진배없다. 결혼은 두 사람의 사랑의 결속이지 물질이 목적은 분명 아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물질로 채우기보다 사랑으로 넘치게 한다면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으랴. 그럼에도 아직도 예전보다는 희석 됐으나 일부에선 결혼을 앞둔 선남선녀들이 혼수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다.
혼수문제로 인해 야기되는 온갖 사회 현상은 물신주의가 팽배한 이즈막만의 일은 아닌 성싶다. 나의 어린 시절만 하여도 혼수 때문에 남편한테 구박받고 시댁 식구들한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여인을 본 기억이 있다.
경찰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 어느 산골에서 잠시 어린 날을 보냈다. 우리 옆집은 솟을 대문이 있는 으리으리한 기와집이었다. 그 집 며느리는 부잣집 맏며느리답게 후덕하고 조신한 여인이었다. 한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늘 얼굴에 피멍이 드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마을 앞 시냇가에서 긴 머리를 감으며 참빗으로 머릿결을 고르곤 하였다, 유독 검고 풍성한 머리카락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어느 여름날 옆집 대청마루에서 시어머니가 그녀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폭행하는 장면을 목격할 땐 어린 맘에 그녀가 참으로 딱했다. 그녀 시어머니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네가 우리 집안에 올 때 해온 게 무엇이 있느냐? 참빗 하나 허리춤에 끼고 온 주제에 남편이 바람 좀 피웠기로 감히 앙탈을 부려? 더구나 발가벗고 왔음 죽은 듯 엎드려 살아야 할 게 아냐?”라고 하며 옆구리를 마구 발로 찰 때 그녀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소리 없이 뜨거운 눈물만 흘렸었다.
그런 시어머니의 학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인고의 세월을 용케 견디었다. 얼마 후 자신의 시어머니가 노망이 들자 지성으로 보살폈다. 웬만한 여인 같으면 지난날 자신에게 행한 시어머니의 몹쓸 행동을 가슴에 깊이 묻어 두었을 것이다. 그리곤 온갖 구박을 행하련만 그녀는 여느 사람과 달랐다. 자신을 못 살게 굴은 시어머니를 너그럽게 용서한 것이다.
훗날 나의 친정어머니께 들은 이야기론 그 여인이 두 번째 부인이란다. 전처는 아이를 못 낳아 시어머니가 내치고 아이를 낳는 조건으로 들여온 여인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집안이 가난하여 그냥 맨몸으로 시집을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아이를 낳지 못해 시집으로부터 그런 천대를 받았다고 하였다.
어린 날엔 “참빛 하나 허리춤에 끼고 왔다. 발가벗고 왔다.”라는 그 말의 의미를 전혀 몰랐었다. 하지만 친정어머니의 말씀으로 미뤄보아 그날 그녀의 시어머니가 한 말은 아마도 혼수를 못해온 것을 그리 비유했나 보다. 하지만 아직도 그 말의 어원에 대한 궁금증은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왜 하필이면 하고많은 물건 중에 그런 여인의 처지를 참빗에 빗대어 표현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마도 참빗은 예로부터 여인의 가장 필수적인 머릿결을 매만지는 도구였기에 그리 지칭했으리라. 참빗은 여인들에게 유용한 빗이었다. 삼단 같은 검은 머리에 동백기름을 발라 그것으로 머릿결을 고르기도 했다. 촘촘한 빗살로 머릴 빗으면 머릿니가 깔린 서캐까지 박멸시켰었다. 참빗은 이토록 여인들의 중요한 미용 도구이어서인지 빗살이 크고 성긴 얼레빗, 면빗 등과 더불어 항상 여인 곁을 지켰다.
참빗은 대나무를 잘게 쪼개어 양쪽으로 나란히 세우고 중앙에 넓적한 대쪽을 붙여 고정시킨 다음 앞뒤로 세죽細竹보다 큰 대쪽을 대었다 가늘고 촘촘한 빗살이 특징이다. 빗이 언제부터 쓰였는지 고증하기는 어려우나 우리나라 낙랑 고분에서 나무로 만든 빗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쓰던 물건임엔 틀림없다.
요즘은 어디서든 이 참빗을 구경하기가 힘들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빗들에 밀려서이다. 걸핏하면 빗살이 부러지던 대나무 빗보다 부드럽고 단단한 플라스틱의 여러 모양과 예쁜 빛깔의 빗 등장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서구 문화 유입으로 머리 모양의 변천에 의해서이다.
우리 조상들은 참빗으로 머릿결을 곱게 고르며 용모를 단정히 하려 애썼다. 하여 선비들은 빗으로 머리를 빗어 상투를 틀고 갓을 써 의관을 갖추는 일을 중요시했다. 동백나무 씨로 짠 기름을 ‘자르르’ 윤기가 흐르도록 머릿결에 바른 후 참빗으로 곱게 결을 다듬어 땋은 댕기 머리, 삼단같이 검은 긴 머리를 반달처럼 얼레빗으로 빗는 여인의 모습을 이젠 어디서 찾아볼까.
단발머리, 생머리가 보기 좋았던 지난날과 달리 현대엔 웨이브가 강한 파마머리가 일색 아닌가. 남자들의 머리 모양도 짧아졌고 심지어 파마, 염색도 하는 세태이다. 뿐만 아니라 남자도 여자처럼 머리를 길게 묶고 다니기 예사이다. 머리 모양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한껏 살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날 머릿결에 동백기름을 발라 비녀로 쪽찐 단아한 그녀의 모습을 나는 좀처럼 잊을 수 없다. 그 머리를 마을 앞 시냇물에서 감으며 참빗으로 정갈하게 빗던 여인의 모습은 어린 나의 눈엔 참으로 고아한 자태였다.
돌이켜보니 그녀는 발가벗고 온 여인이 아니었다. 혼수를 바리바리 차떼기로 싣고 온 여인보다 더 성정이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요즘 따라 더욱 그 여인이 한국의 전형적인 여인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문득 잃어진 참빗과 함께 그녀가 못내 그리웁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옛 물건에 얽힌 추억과 효용 가치 등을 사유하여` 테마로 쓴 글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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