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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WeeklyKorea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무위의 예술품 -보자기(2)-

최종 수정일: 8월 20일

보따리를 가슴에 끌어안고 고샅에서 멀어진 철없는 이모였다. 그날 그 고샅에서 단발머리를 봄바람에 날리며 허둥지둥 먼 길 떠난 이모의 모습을 늘 떠올리노라면 어린 마음에도 왠지 가슴이 싸아 했다. 도회지 학교를 다니기 위해 우리 집에 얹혀살던 이모였다.


이모가 우리 집을 나간 후 어머니도 대문을 항상 빼꼼이 열어놓고 집 나간 동생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어린 시절 분홍색 보자기만 보아도 마치 이모가 돌아온 듯 하여 반가웠다. 이모가 친구 꼬임에 빠져 가출을 한 것이다.


이모는 꽤 여러 달 째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이모가 몇 년 후 두루뭉술한 몸태로 우리 집을 찾았다. 그 때도 집 나갈 때 들고 갔던 분홍색 보퉁이가 손에 들려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놀란 외가의 외할머니는 서둘러 이모의 남자네 집에 사주단자를 보냈다. 어린 나는 그 사주단자를 품은 분홍색 보자기가 참으로 보기 싫었다. 외할머니께서 그 사주단자만 보내면 이모는 이제 남의 집 귀신이 된다고 하여서다. 그 말의 의미를 몰랐던 나는 그토록 예쁜 이모가 왜? 무서운 귀신이 되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얼마 후 이모는 두 볼이 통통한 계집아이를 등에 업고 우리 집엘 찾아왔다. 이모 곁엔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이번엔 분홍색 보따리가 그 남자 손에 얌전히 들려 있었다. 이렇듯 지난날 이모와의 추억이 얽힌 보자기다. 그래서인지 이모에 대한 애틋한 기억을 품고 있는 보자기를 볼 때마다 왠지 감회가 새롭다.

하지만 요즘엔 물건을 싸고, 운반하고. 덮던 보자기의 모습이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보자기 대신 종이 가방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접으면 한낱 하찮은 천 조각에 불과한 보자기가 아닌가. 거기에 서리서리 서려있는 의미를 되돌아보면 가슴에 묘한 울림마저 인다.

비록 천 조각에 다름없지만 펼치면 제 품 이어지는 데까지 물건을 감싸주고 가려주는 넉넉함이 있다. 그 여유로움은 비좁은 공간의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정갈하게 갈무리해주는 역할까지 하잖은가.

보자기를 떠올리며 나 또한 그런 가슴을 지닌 적 있던가. 남의 허물을 덮어준 적 있던가. 새삼 가슴에 손을 얹는다. 삶에 찌들어서인지 보자기의 다양한 실용성이 마냥 부럽다. 밥상 위에 다소곳이 올라앉아 제 품을 활짝 펼친 모습은 임 기다리는 여인처럼 순박해 보여 그것마저 본받고 싶다.

조각보만 보더라도 옷감이 귀했던 그 시절, 여인들은 조각 천 하나에도 일일이 생명을 불어넣었다. 제 생긴 모습대로 홈질, 공그르기, 상침질, 시침질, 반박음질, 박음질을 반복해가며 무위의 예술품을 창조했다. 빨강, 파랑, 노랑, 하양 까망의 오방색이 적절히 배합된 조각보엔 마치 추상화가 클레어의 화폭에 숨어있는 듯하다.

규방 깊은 곳서 세상 구경 한번 못한 우리 옛 여인들 아닌가. 어디서 이렇듯 놀라운 미의식을 익혔을까? 아마도 본성이 더렵혀지지 않은 순진 문구함에서 비롯된 미의식의 표출이었으리라.

이것에 머물지 않고 딸에게 며느리에게 대물림하며 복을 빌기도 하였다. 그 효용가치에 따라 가리개로, 받침으로, 덮개로, 꾸미고 성장하며 우리의 삶속에 깊숙이 자리했었으니.

그 때문인지 용도에 따라 이름 또한 다양하다. 전대 보, 밥상보, 이불보, 후리 보, 빨랫보, 버선본보, 받침보, 덮개 보, 채찍 보, 횃대 보, 간찰 보, 서답 보, 함 보, 경대 보, 목판 보, 반디그릇 보, 기러기 보, 금박 보, 사주단자 보, 노리개 보 등등.

우리들 곁에서 잊혀진 보자기의 이름들을 나직이 입 속으로 불러본다. 갑자기 막내딸아이 손을 잡고 보자기를 들고 장에라도 나가고 싶다. 그 속에 복(福)을 담듯 가족들을 위해 오늘 저녁 소박한 밥상을 차릴 먹을거리를 한껏 담아오고 싶다. 그러면 나도 보따릴 든 지난날 여인네의 정겹던 뒷모습을 한번쯤 흉내 내보는 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옛 물건에 얽힌 추억과 효용 가치 등을 사유하여` 테마로 쓴 글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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