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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WeeklyKorea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달디 단 잠을 위하여 -이부자리-

“잠아 잠아 지 마라/ 요 내 눈에 오는 잠은 / 말도 많고 흉도 많다/ 잠 오는 눈을 쑥 잡아 빼여/ 탱자나무에다 걸어놓고 / 들며보고 날며 보니/ 탱자나무도 꼬박꼬박….”

어머닌 초저녁부터 밀려오는 잠을 쫓기 위해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이불솜을 놓았다. 온종일 아이들과 고무줄놀이, 술래잡기로 고단했던 필자는 어머니가 부르는 그 노래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곤 하였다.

잠결에 눈을 떠보면 밤늦게까지 희미한 등잔불 아래서 이불을 바느질 하는 어머니였다. 구름 같은 하얀 목화솜을 손으로 살살 펴서 곱디고운 감색 이불 몸판 위에 놓았다. 하루 종일 바느질 일로 지쳤음에도 자식들 따뜻이 덮어줄 이부자리 만드는 일에 당신 몸 지치는 줄 몰랐다.

칼바람이 살을 에는 추운 겨울날, 우리들은 밤마다 손바닥 만 한 이불 속에 몸을 묻곤 하였다. 그때마다 서로 이불을 잡아당겨 덮느라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기 예사였다. 해가 거듭할수록 우리들의 몸집이 커지자 자연 이불도 모자랐다. 하지만 가난한 살림살이에 번듯한 이불 한 채 장만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머닌 그동안 바느질삯을 푼푼이 모아 간신히 목화솜 수 십 근을 장만했다. 그것으로 그 날 어머니는 감색 이불 겉감 위에 빨강색 깃을 달고 눈처럼 흰 호청을 씌워 이부자리 한 채를 어렵사리 장만했다. 어머니가 만든 이불은 작은 우주였다. 그 이불의 깃은 하늘이오, 몸판은 땅이었다. 이부자리의 몸판 위쪽에 빨강색 깃을 덧댄 것은 모양새를 내기 위함이 아니었다.

빨강색은 부정한 것,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강한 힘이 배여 있고 생기를 더욱 왕성하게 해주는 활력이 담겨 있다고 어머닌 믿은 것이다. 이부자리 한 채에도 이렇듯 자연의 이치가 숨어있고 가족의 안녕과 복(福)을 비는 어머니의 간절한 뜻이 배어 있었다.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이 깃든 이불에 몸을 묻을 때마다 우리 형제들은 달디 단 잠 속에서 이솝 우화 이야기의 주인공도 만났다. 그토록 먹고 싶었던 눈깔사탕도 꿈속에서 맛보았다. 뜨듯한 구들장이 사라지고 침대를 사용하는 가정이 늘면서 어느새 목화솜 넉넉히 넣은 푹신한 솜이불이 장롱 속에서 사라졌다. 우리 곁에서 없어진 게 어찌 이 뿐이랴. 솜이불에 넣었던 갸륵한 정성과 혼을 우린 이미 잃었다.

이젠 이불 만드는 곳에 가 봐도 호청 씌워 바늘로 시침질해 깃 달은 전통 이불보다 지퍼 달은 벙어리 식 이불이 다수 아닌가. 이는 간수하기 편리함만을 추구하다보니 전통 이불 만드는 것을 성가시게 여긴 탓일 게다. 사회 기능의 다원화는 우리의 전통 정서를 송두리째 앗아갔다.


우리 것을 업신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두 눈 부릅뜨고 노심초사 내 것을 지켜도 시원찮을 형편 아닌가. 우리가 먼저 나서서 민족의 혼과 정서를 누에가 이파리를 갉아먹듯 야금야금 없애 가고 있다면 지나칠까? 어린 날 어머니께서 이불 호청을 뜯어서 빨고 말리고 다듬이질 하는 모습에서 필자는 인내와 정성을 배웠다.

어머니가 만들어 준 이부자리를 덮으면서 조상의 혼과 지혜를 새삼 깨우치기도 했다. 물질문명이 최고로 대접받는 산업 사회인 요즘, 조상들이 수천 년을 이어오면서 덮었던 이부자리를 잃었다. 그러자 그것이 품은 자연의 이치와 지혜로운 생활 방식마저 우린 지금 외면하게 된 것이다. 먹고 사는 일에 기름기가 돌았건만 한편으론 인륜이, 천륜이 연거푸 무너지고 있다. 물욕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해하고 형제간에 칼부림을 내고 있다. 이런 세태에 사노라니 불면증에 시달리는 날까지 잦다.

삶에 찌들수록 어린 날 덮었던 두툼한 솜이불이 몹시도 그립다. 까슬까슬한 새하얀 이불 호청이 씌워진 포근한 이불에 심신(心身)을 묻고 푹 잠들고 싶다. 점점 피폐해가는 우리네 가슴을 훈훈히 덥힐 솜이불 같은 사람도 불현듯 그립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옛 물건에 얽힌 추억과 효용 가치 등을 사유하여` 테마로 쓴 글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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