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어머닌 바람 한 점 들이칠 틈 없는 편리한 아파트 생활이 불편하단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위가 심한 주택 생활을 굳이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최신 설비를 갖춘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필자로선 어머니의 그 고집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이젠 어머니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어머니께서 아파트 생활을 불편해 하는 것은 이웃과의 단절 때문인 듯하다. 맞벌이, 독신 가정이 늘어나다보니 아파트에선 이웃들의 얼굴을 마주치기가 좀체 어렵다.
회색빛 벽과 철문을 굳게 닫은 아파트 생활에 답답증을 느낀 어머니는 이웃과 소통하고 자연과 접할 수 있는 주택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어머니를 위해 언젠가 정원이 넓은 집을 구하였다.
하지만 집이란 미래의 재화 가치 및 환급성도 따져보아야 하고 교통, 도심지로부터 접근성 등도 살펴봐야 한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나로선 더구나 어머니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몇 달을 시내를 메주 밟듯 다닌 끝에 드디어 십 수 년 전 어머니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여 계약을 했었다. 건평을 제외한 50여 평이 넘는 훌륭한 정원을 갖추고 있는 주택이었다.
정원엔 목 밸일홍이 화사하게 피어있고 온갖 수목들이 우거져 마치 도심지 속에서 숲을 만난 듯 운치가 있었다. 어머닌 그 집을 보고 첫눈에 반해 집값도 제대로 흥정도 못한 채 서둘러 계약을 해야 했다.
무엇보다 그 집은 담장을 허물고 주차장 시설을 완비해 시민들이 오가며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제의가 시에서 직접 들어온 집이란다. 필자는 그 말에 혹했던 것이다. 현재는 높은 담장이 쌓여 있지만 언젠가는 그 담장을 허물어뜨리고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꿈을 간직할 수 있는 집이 아닌가.
집의 담장을 허문다는 것은 나를 버리고 타인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나 진배없는 것이다. 날로 인심이 흉흉해 집안에 패쇄 회로를 설치하고도 마음을 못 놓는 현실에선 어쩌면 불가능한 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집으로 인해 그런 꿈을 간직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인일일까.
우리 조상들은 집을 지을 때 앉아서는 밖이 안보이고 서면 밖이 보일 정도로 야트막하게 토담을 쌓았다. 이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을 강조한 건축법이 아닐까 싶다. 조상님들은 콩 한 톨도 이웃과 나눠먹던 훈훈한 가슴을 지닌 분들이다. 내 것을 아끼지 않고 덥석덥석 남에게 내주는 일을 서슴지 않았던 분들이다.
하다못해 내 집 실과나무가 이웃집으로 가지가 넘어가면 그 과실을 이웃에게 양보했던 넉넉한 조상님들의 인심이었다. 그것을 옛 건축물을 통해서나마 잠시 엿볼 수 있는 현실이 어찌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이즈막은 어떤가. 담장을 높이 쌓고 그도 모자라 고층 건물을 세우고 있다. 일조권 침해로 시비가 일고 주차 문제로 이웃과 칼부림까지 발생하는 각박한 세태에 살고 있다.
나는 정원이 넓은 이 집에서 머잖아 담장을 허물고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 생각에 당시 매우 기뻤다. 치매 증세에 시달리던 친정어머니 노후를 이 집이 지켜준다 생각하니 더욱 정감이 갔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누구든 좋아하는 필자는 이 집에서 조상님들처럼 이웃을 위해 내 마음을 한껏 퍼낼 준비를 하며 살았던 기억이 요즘 따라 왠지 새롭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옛 물건에 얽힌 추억과 효용 가치 등을 사유하여` 테마로 쓴 글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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