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만 셋이었다. 그러나 이제 둘만 남아 이 딸들의 장차 사윗감 고를 일이 고민된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주장이 강해 결혼 상대자로 부모 의견을 중요시하기보다 제 눈에 차는 사람을 스스로 선택하는 데 주저치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큰딸아이는 부모 눈에 드는 상대를 남편감으로 선택하겠노라고 평소 입버릇처럼 말한다. 하나 언제 어느 때 딸아이 눈에 콩 깎지가 씌워질지 모를 일이다. 부모인 나로선 큰 욕심 안 부리고 건전한 사고방식을 지닌 성실한 젊은이라면 사윗감으로 더 이상 바랄게 없다.
굳이 욕심을 부린다면 우리 집안에 아들이 없다보니 친아들처럼 사위를 내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은 분명 있다. 그 바람이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어찌 보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라면 지나칠까? 맞벌이가 늘고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아도 맡길 곳이 마땅치 않은 게 우리나라 현실 아닌가. 이런 형국이다 보니 젊은이들이 점점 아이를 낳기를 꺼리는 세태다. 이때 친정 부모님이나 시댁 부모님이 곁에서 가사일과 아이를 돌봐준다면 마음 놓고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 나의 마음 같아선 노후를 외손에게 발목 잡히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막상 내 앞에 그 일이 닥친다면 자식일이니 어찌 외면할 수 있으랴. 이래서 옛 속담을 현실에 맞게 수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처가와 변소는 멀수록 좋다”라는 말을 이젠, “처가와 측간은 가까울수록 좋다.” 라고 말이다.
예전에 측간은 더럽고 불결하고 냄새 나는 곳이어서 위생상 집안에 멀리 자리할수록 좋다고 했다. 한편 처가가 멀수록 좋다는 말은 아마도 시집 입장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자신들의 며느리 시집살이를 은폐 시키려는 방편에서 나온 말이라면 나만의 생각일까?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시대도 바뀌어 사돈끼리 노래방도 가고 함께 외국 여행도 가는 세상이다. 또한 예전처럼 매운 시집살이를 할 며느리가 어디 있겠는가. 만약 시집에서 그리했다면 당장 이혼사유의 일부가 되리라.
현대 건축 양식엔 우리들의 편리한 삶을 도모키 위해 집안에 화장실이 가까이 있도록 설계돼 있다. 바쁜 현대인들이 예전처럼 측간이 멀리 있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이젠 우리의 화장실이 단순히 생리적 배설을 돕는 장소라기보다 목욕시설도 함께 갖추고 있잖은가.
이뿐만이 아니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관공서 같은 곳에 가보면 측간 문화도 많이 바뀌어 청결함은 물로 마치 카페에 온 듯한 느낌이 드는 곳도 많다. 측간이라기보다 아늑하고 정갈한 분위기여서 이곳에서 볼일도 보고 여성들은 화장도 고치고 옷매무새도 매만지면 휴식을 취하곤 한다.
물론 우리 조상님들도 변소를 무조건 불결한 장소로만 여긴 것을 아니다. 불교에선 근심을 해결한다고 하여 이곳을 ‘해우소’라 하였다. 무엇보다 우리 몸의 건강의 척도를 쾌변에 두고 있잖은가. 아무리 영양가 있는 음식을 섭취했어도 제대로 배설을 못한다면 건강을 해친다. 그럼에도 우리 인체 중 배꼽 아래를 천시하는 의식으로 인해 측간을 무조건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장소로만 인식하여 온 듯 하다.
한편 조상들의 시각은 남달라 화장실을 단순한 배설의 장소, 불결한 곳으로 치부하기보다 관조의 장소로 여기기도 했나 보다. 어의 허준은 그의 제자를 괴질에 걸린 중국 대신 진료 차 중국으로 보내며 치료 방법을 측간 귀신과 상의하라고 부탁할 정도였으니 전하여 오는 말을 되새겨보면 수긍이 갈 법도 하다.
허준의 제자가 중국에 도착하여 온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다 사라지는 괴이한 병에 걸린 대신을 보자 스승의 당부도 까맣게 잊고 당황했다고 한다. 아무리 고심해도 처방전이 안 떠올라 측간에 앉아 머리를 짜낼 때 허공에서 “구곡수!九谷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이때서야 비로소 스승의 당부의 말을 떠올리고 대신 집안 근처의 아홉 계곡수와 그의 질병을 대비시켜 명약을 처방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측간에 무슨 귀신이 있으랴. 허준의 제자가 묘약 처방전을 떠올린 것은 이곳에서 속을 비우고 나니 모든 기능이 원활해지자 생각이 잘 떠올라 지혜가 샘솟은 게 아닌가 싶다. 이런 변소가 이즈막에 이르러선 처가와도 연관성이 있는 장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현대는 암탉(여자)이 울어야 집안이 바로 서는 세상 아닌가. 이 때 세상살이에 지칠 때마다 암탉이 그 근심을 의지할 곳은 친정 밖에 더 있는가.
이리하여 아내의 근심을 풀어주는 처가가 가까워 좋았다는 말을 훗날 사위한테 듣는 장모가 되는 게 나의 꿈이라면 꿈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빨리 장모 소릴 듣고 싶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옛 물건에 얽힌 추억과 효용 가치 등을 사유하여` 테마로 쓴 글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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