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과 마오리족 족장들 간에 뉴질랜드의 기초가 된 조약에 대해 재해석하는 법안이 의회에 올라와 전국을 정치적 소용돌이를 몰아넣고 있다.
이 법안은 법적으로 효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아무도 기대하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이 법안은 지난 180 여년간 영국이 이 나라를 식민 지배하면서 원주민들에게 제안된 약속들을 지켜 나가는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토론과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인종간 관계와 논란이 되는 인화점이 되었다.
지난 화요일 수만 명이 수도 웰링턴으로 모여들어 일주일간 지속되었던 시위를 위해 마지막 행진을 했다. 이 행진은 1840년 와이탕이 조약 위반에 대한 관심을 끌기 위해 마오리족의 평화적 시위인 히코이로 마무리했다.
지난 주 뉴질랜드 의회는 마오리족 정치인들의 하카를 통한 시위로 일시 휴정되었으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 방송되기도 했다.
와이탕이 조약은 뉴질랜드의 근간이 되는 문서로, 영국 왕실의 대표자들과 500명의 마오리족 족장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이 조약은 영어와 마오리어로 만들어져 왕실과 마오리족 간의 관계를 이끌어내는 원칙이 되었다.
마오리들에게는 영국 시민의 권리와 특권을 인정하도록 하고 있지만, 영어와 마오리어로 된 조약은 족장들의 업무 권한과 영토 그리고 자치권 등에 대한 양도권 해석에 상당한 차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 십 년을 지나면서 영국 왕실은 영어와 마오리어 버전 모두를 위반해 왔다. 20세기 중반까지 마오리족 언어와 문화는 위축되었으며, 원주민들은 이를 연습하거나 시행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부족의 토지는 압수당하면서 마오리들은 여러 방면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마오리들의 지속적인 시위와 반대 운동에 의해 지난 50년동안 뉴질랜드 법원과 입법 관계자들 그리고 와이탕이 조약과 관련된 문제들을 중재하도록 만들어진 와이탕이 법정 등은 두 언어로 되어 있는 조약의 상이점들을 조정하고, 그들의 결정에 있어서 조약의 원칙들을 재구성하면서 위반 내역들을 다시 확인하게 하였다.
조약의 원칙들은 융통성이 있어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왕실과 마오리족의 이익을 보호하고 참여로 양자 간의 파트너쉽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여러 면에서 마오리들이 권리를 박탈당하였던 지난 날 이후 점점 마오리들의 권리가 회복되기 시작해, 마오리어는 르네상스 시기를 맞이했고 요즈음에는 매일 마오리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그 이후 펼쳐진 정책들과 마오리들에게 주어진 불형평성을 목표로 취해졌고, 특히 만연되어 있는 마오리족의 토지와 천연 자원들을 수용한 조약 위반으로 수 십억 달러의 자금이 왕실과 부족 간 협상 중이다.
그러나, 일부 뉴질랜드 국민들은 조약의 재해석에 대하여 불만을 표하고 있다.
입법부의 한 구성원으로 지난 총선에서 9%의 지지를 얻은 비록 소수이지만 자유로운 정책을 펼치는 ACT 당의 데이비드 시모어는 연합 정부의 조건으로 이 안건을 중요한 내용으로 정했다.
시모어의 법안은 와이탕이 조약의 원칙에 대한 정의를 확정하고, 이런 특정 내용을 마오리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뉴질랜드 국민들에게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그는 조약의 뜻을 조금씩 재해석하여 그 의미를 백지화하는 내용이지만, 이 제안에 대하여 전 총리를 포함해 국회 좌우익 의원들은 물론 국내 저명한 법조계 인사들뿐만 아니라 수만 명의 마오리들과 장거리 시위 행진에 참여한 비 마오리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시모어 의원의 법안이 국회에서 마지막 독서까지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는 전혀 기대되지 않는다.
반대의 뜻을 표하는 비방자들은 이 법안이 헌법상의 대혁신으로 조약에서 보장되어 현재 법적으로 보호되고 있는 권리들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하며, 마오리족인 시모어 의원이 원주민에 대한 반발을 불러일으킨다고 비난했다.
평화로운 도보 시위는 마오리족의 전통이라고 시위에 참가한 마오리들은 설명하고 있으며, 지난 화요일 시위에 30,000명 정도가 웰링턴의 국회까지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경찰이 밝혔다.
많은 사람들은 시모어 의원의 법안에 대해 반대 시위를 했지만, 또 다른 일부는 우익 정부로부터 마오리에 대한 일련의 정책들에 대해 반대의 뜻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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