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담담했다. 하지만 짧은 전화 통화 속에서 당시의 답답하고 착잡한 심경과 무엇보다 우울한 자신의 처지가 힘없는 음성에서 여실히 묻어났다. 그가 쓴 한 권의 소설집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고 그로 말미암아 그는 변태적 교수, 외설 작가라는 낙인을 피할 수 없었다.
고故 마광수 교수가 그다. 1991년 그의 소설집 '즐거운 사라'가 출간되자 이 책이 건전한 성의식을 매우 심각하게 왜곡 시킨 음란물이라는 이유로 그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급기야는 외설물이라는 이유로 검찰에 구속까지 당했다. 그리고 그는 2016년 재직 중이던 연세 대학교를 정년퇴임 한 후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2017년 9월 어느 날 스스로 목숨을 끊어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그는 가고 이 세상에 없지만 아직도 서재엔 그가 남긴 몇 권의 저서가 여전히 건재(?)한 모습으로 책꽂이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즐거운 사라』, 『가자, 장미여관으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추억마저 지우랴』 등의 소설집이 그것이다. 물론 마광수의 여러 저서들 중에 논란 속 중심에 놓였던 '즐거운 사라'는 아직도 재출간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란다. 이유는 그에게 내려진 유죄 판결이 재심을 통하여 무죄를 선고받아야 하는데 그가 생전엔 자신의 책이 금서禁書가 된 것에 대하여 대항할 기력을 잃었고, 이젠 마광수 교수가 고인이 되어서 더더욱 여전히 '즐거운 사라'는 금서로 존재하는 상태란다.
어찌 보면 그는 『즐거운 사라』를 출간 할 시기인 1991년에 이미 오늘날 우리의 현 세태를 미리 예견하는 직관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기에 반하여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물밀 듯 밀려오는 성 개방을 맞고 있잖은가. 성 개방을 넘어 인간의 고귀하고 성스러운 성이 한낱 타락한 '권력의 침대'로 이용당하고 있다면 지나칠까.
소위 사회지도자 층이라고 칭할 모 정치인의 경우만 하여도 그렇잖은가. 어둠 속에서 음습한 뒷거래로 성을 상납 받고 상납 자 별장에서 어린 여자와 부적절한 짓을 저지른 것만 살펴봐도 '과연 '즐거운 사라'의 내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게 아니어도 지난날 베이비붐 세대에 존재했던 정조관념도 실은 오늘날 많이 희석된 게 사실이다. 시내 근교를 한 발짝 만 나서도 우후죽순처럼 지어진 러브 모텔이 이를 방증 하고 있잖은가.
이로보아 지난 역사 및 시대의 모습이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것과는 딴판으로 흘렀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 든다. 음악인 경우만 하여도 그렇다. '타펠무지크'를 작곡한 바로크 시대의 음악가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은 그 당시에는 헨델이나 바흐보다 훨씬 높은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인정받은 음악 작품만하여도 무려 800 개에 이르며 그가 작곡한 곡이 총 3,000 여 개에 이른다고 하니 그 시절 그의 음악가로서 명성을 짐작할 만 하다. 그러나 우린 텔레만보다 바흐나, 헨델을 더 그 시대의 유명한 음악가로 인정하고 있다. 문학도 매한가지다.
1920년대 조선을 휩쓸었던 한용운의 '님의 침묵' 만이 인기가 있었던 게 아니다. 어디 이뿐이랴. 그 시절 인기몰이의 선두였다 할 이광수 소설 '무정'또한 아니었다. 그렇다면 베스트셀러의 화제 작가는 누구였을까? 의외로 시인이자 수필가였던 노자영의 연애편지집인 '사랑의 불꽃' 이었다고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이 지은 '책과 혁명' 내용을 살펴보면 사실 프랑스만 하여도 17세기-18세기에 걸쳐 일어났던 프랑스 혁명의 시초는 대부분의 금서 도서들에 의해서였다는 것을 쉽사리 알아챌 수 있다. 레날의 '철학적 역사' 같은 책은 정통 카톨릭 교리와 그 시대 권력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책이었다.
이렇듯 대중들에게 은밀히 읽힌 책으론 여성이 능동적으로 쾌락을 추구한다는 내용을 통하여 당시 프랑스 사회질서에 맞서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던 『계몽 사상가 테레즈』를 비롯, 프랑스 귀족들의 타락한 성생활을 직설적으로 공격한 『뒤바리 백작 부인에 관한 일화』 등을 꼽기도 했다. 이 책들이야말로 금서였지만, 오히려 음지에서 그 책들은 더욱 날개를 한껏 달고 허공을 휘젓고 다녔나보다.
이렇듯 한 권의 책은 인간의 사상과 철학에도 깊이 관여한다. 어린이에게 양서는 때론 만 명의 훌륭한 선생님과 맞먹기도 한다. 그만큼 독서는 유익하다. 그러나 외설물인 경우 말초 신경까지 자극하기도 한다. 젊은 날 읽었던 염재만의 소설 『반노』를 읽은 후엔 개인적으로 나 역시 남녀 성애 표현이 그다지 외설스럽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내용 일부가 수정되어서 출판되었던 책을 독서를 하긴 했다.
지금 나는 이 글을 쓰며 고인이 된 마광수 교수를 옹호내지 혹은 비판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한 권의 책 속엔 시대적 역사와 담론이 담겨져 있기에 문인으로서 진정 오늘날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 성찰의 시간이 필요해서이다.
다음 호에 계속

문학 평론가. 수필가 하정 김혜식 작가의 ‘세상의 희망 상자’
1995년 ‘순수문학’에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한 김혜식 작가는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평론집을 비롯해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아시아작가상 수필 부문 대상, 11회 청주문학상,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공로상, 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 작가 연혁
-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드림 작은 도서관 관장 역임,
- 저서 : 수필집 《내 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
- 현, 충북일보, 경북 신문, 독서신문 고정 필진
- 아시아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 청주예총 공로상, 제1회 피천득 연고 광시문학상, 제8회 작가와문학상 평론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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