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뉴질랜드 국경이 역사상 처음으로 폐쇄된 지 6개월이 지났다.
체크인 데스크가 꽉 차있는 국제 공항은 며칠 만에 인적이 끊겼고, 공항 주차장 및 상점 그리고 실내는 이제 거의 텅 비어 있으며, 오클랜드 공항의 출국장을 보고 있는 여행객들은 전국에 걸쳐 9편의 국제선 출국 항공편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착하는 항공기는 호주에서 3대, 로스앤젤레스, 쿠알라룸푸르, 홍콩, 라로통가에서 각각 1대씩 총 7대의 비행기로 이루어지고 있다.
항공권 티켓 없이는 그 누구도 국제선 터미널에 들어갈 수 없고, 귀국하는 친구나 친척들과의 즐거운 재회도 할 수 없으며, 출국하는 승객들은 항공편이 호출될 때까지 환승 라운지에 앉아 있다가 버스로 비행기에 옮겨지게 된다.
크라이스트처치 공항과 웰링턴 공항은 국내선 항공편 운항으로 분주해지고 있지만, 국제선 항공편은 거의 중단됐다.
5월 어느 날, 국제 여행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뉴질랜드는 한때의 고립된 섬으로 되돌아갔다. 아무도 그 섬을 떠나거나 입국하지 않았다.
● 역사를 만드는 국경 폐쇄
3월 19일, Jacinda Ardern 총리는 그날 밤 자정부터 비 뉴질랜드 거주자와 시민들에게 국경이 폐쇄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뉴질랜드에 있어서, 국경을 폐쇄하는 것은 역사를 만드는 일이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삶을 변화시켰다. 표를 사려고 달려온 뉴질랜드 인들은 취소된 항공편과 공항 대기실에서 흐느끼는 승객들의 모습을 전했다.
RNZ 기자 Chen Liu는 다음날 아침 티켓을 얻은 지친 여행객들이 도착하자 오클랜드 공항으로 갔다. 그녀는 국경 폐쇄 발표로 인한 불확실성 때문에 뉴질랜드를 빠져나가기 위해 뉴질랜드 여행을 서둘러 끝내고 출국하려는 방문객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국가들도 국경 폐쇄를 선언하고 있었기 때문에 귀국 예정일 전에 돌아오는 뉴질랜드 사람들도 있었다. 한 소녀는 캐나다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있었고,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가 캐나다로 여행을 갔다. 그러나 그들은 외국인들에게 국경이 닫혀 있어서 미국보다 더 멀리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온 가족이 뉴질랜드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그들은 자가격리 규정을 지킬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그들을 인터뷰 한 보건 관리들과 인터뷰하고자 만났다.
● 승객 수 97% 감소
올해 2월 56만2,076명이 도착했고 51만8,275명이 뉴질랜드를 떠났다.
3월 19일부터 9월 19일까지 6개월 동안, 그 숫자의 극히 일부만이 여행했다. 오클랜드 공항에 따르면, 6,400개의 국제선 항공편을 이용하는 승객은 약 15만 명에 이르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개월 동안의 운항 횟수는 80% 가까이 줄었고 승객은 97% 줄었다고 발표했다.
4월에는 한 달 동안 6,385명이 입국하고 3만1,896명이 출국해 아무도 입국하지 않은 날도 있었으며, 일일 숫자로 한자릿수 도착에 2,000명의 출국으로 반등했다.
5월 25일, 그 날은 아무도 뉴질랜드로 떠나거나 도착하지 않는 새로운 첫 번째 날이 됐다. 5월 한 달은 더 많은 사람들이(10,111명) 떠나고, 더 적게 도착(5,577명)하였으며, 일부는 그들 정부와 우리 정부가 마련한 송환 항공편을 이용했다.
6월에는 14,864명이 출발하고, 9,162명이 도착했으며, 7월에는 양방향으로 향하는 사람이 몇 백 명씩 있었다. 이후 도착은 거의 같았지만 출발은 18,195명으로 늘어났다.
● 잘못된 쪽에 남겨진 사람들
국경이 폐쇄되고 비행기 연계가 부족해 졌을 때, 엉뚱한 나라에서 갇힌 사람들은 공포스러웠다고 한다.
일부는 자국으로 돌아갈 송환 항공편이 필요했고, 일부는 그들 국가에서 송환 항공편이 도착했다.
그리고 나서도 뉴질랜드에 발이 묶인 사람들이 있었다.
휴가 중이거나 직장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항공편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은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다른 이야기들은 국경이 닫힐 때 휴가 중이거나 가족을 방문한 방문비자 소지자들로부터 나왔고, 몇몇은 해외에 갇힌 사랑하는 사람을 둔 파트너나 부모들로부터 나왔다.
3월에 서둘러 표를 사거나 공항에 도착하려는 공포는 순식간에 당황과 우울함으로 바뀌었다.
일과 인도주의적인 이유로 국경 제한을 일부 면제해 준 지 6개월이 지났지만, 현재 진행 중인 국경 폐쇄로 인해 산산조각이 난 삶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많다.
36 세의 지역 보건위원회 관리자 인 Zee Pathan은 남편 Muz와 여섯 살 된 딸 Zaaha와 함께 아픈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인도를 방문했다.
Zee Pathan은 이 6개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시기였다고 말하며, 입국 면제신청을 얼마나 했는지 이민부로부터 받은 거부 횟수를 잊어버릴 정도라고 밝혔다.
이어 어린 딸 Zaaha는 다음 달에 7세가 되는데 그녀의 유일한 소원은 학교 친구들과 생일을 축하하는 것이다. 인도에서 모든 학교가 문을 닫는 등 그녀의 학교 교육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학교들이 신규 등록을 받지 않고 있어 온라인 교육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녀는 Covid가 등불처럼 번지고 있고 너무 불안하다며, 이 모든 것이 몇 달 안에 해결될 것이라고 항상 생각했지만, 이것은 결코 끝나지 않는 싸움 같다고 덧붙였다.
그녀가 입국 면제를 신청했던 많은 신청서들 중 하나는 케이스 담당자에 의해 승인되었지만, 고위 관리자에 의해 거절당했다. 그녀는 유학 후 취업 비자를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경을 통과할 수 있는 외국인에 대한 최근 연장에 대한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주 이민부 장관은 필수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고 거주 비자를 위해 일하는 소수의 비자 소지자들에게 약간의 구제를 발표했다. 그 기준에 따르면, 당사자는 여전히 그의 직업을 가지고 있고 이전에 뉴질랜드 학교에 다녔던 부양 자녀가 있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녀는 이 두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지만 그녀의 비자 범주가 일치하지 않는다. 왜 이런 차별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의 교육을 위해 수천 달러를 투자함으로써 그 비자를 취득했다. 그녀는 또한 일을 하고 세금을 지불함으로써 이중으로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적어도 아직 직장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사람들을 돌아오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캔터베리 DHB는 나의 무급휴가를 1월까지 연장해 주었지만, 그때까지 돌아오지 못하면 내 계약은 파기될 것이고, 내가 거주하던 집에 관해서 나는 집주인에게 일부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는데 그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데 매우 협조적이었다. 나의 모든 소지품과 특히 교육 자격증 등은 친한 친구가 자지고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친구들 중 일부는 뉴질랜드에서 영주권자 또는 파트너였기 때문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불확실성과 고통이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하지만 나는 단지 내 딸을 위해 살아남고 있다고 말하며, 나는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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