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닦이라는 직업이 있다. 이제 귀하신 몸이 되었다. 열 번을 닦으면 싸구려 구두 값이 되고 50번을 닦으면 좋은 구두 하나 값이 된다. 구두를 잘 닦으면 발걸음이 조심된다. 잘 차려입지 않아도 말쑥해 보인다.
그래서 아끼지 않고 구두를 닦는다. 구두에 그냥 내려앉은 먼지를 없애는 방법이 하나 있다. 미지근한 물을 흘리면서 가볍게 구두를 헹구는 것이다. 그러면 먼지는 쓸려간다. 광이 죽기 전에 한 두 번은 가능하다.
먼지가 뿌옇게 앉아서 털어 내려다 놀라서 그만 두었다. 옆으로 보니 그냥 흙먼지가 아니었다. 아뿔싸! 이 도시에도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중국대륙에서 날아온 황사는 아니었다. 샛노란 것이, 마치 개나리 꽃 같아 보이는 것이 무엇이던가?
해가 긴 윤사월에 흩날렸다는 그 송홧가루다. 잘 모아서 떡 고물로 쓸 그 송홧가루가 내려앉은 구두…. 닦지도 씻지도 않기로 했다.
댓돌위에 가만히 벗어 놓는다. 그래, 언제 내가 너를 생각했었더냐? 미안해서 연습한답시고 구두에 대한 낙서를 해 보았다. 모두 시시(詩詩) 하는데 시는 아니고 시시한 낙서 말이다.
[ 분식(粉飾) ]
검은 구두에 앉은 먼지
털려고 보니 노오래서 그냥 둔다.
낮은 데서 무거운 짐 지고
불평 한번 안 했었지
덥다고 춥다고 젖었다고
내색 한번 안 했었지
네 밑창이 닳도록
뛰어 다니면 되는 줄 알았지
애써 외면했네.
네 가쁜 숨소리
온 데가 다 삐거덕 거리는 소리
송홧가루 분 바르고
너도 한 번 뽐내라.
고생 많은데 고생 했는데
내게 엄마 품을 내어 주느라고.
분식(粉飾)이란 분을 발라 ‘이뻐보이게’ 꾸민다는 말이다. 화장(化粧)이라고 한다. 회계장부를 조작한다는 말 보다 그냥 분발라 예쁘게 하는 것으로 말버릇이 되었다. 생얼이나 민낯으로 사는 것이 좋겠지만 빠알간 입술연지라도 발라야 생기 도는 사람 같지 않던가?
약속시간이 조금 남아, 그냥 기다리느니 길가의 부스(booth)에서 구두를 닦는다. 그런데 만날 사람이 왔다. 그래서 대충 닦아달라고 했다. 대충이라고요?
똥그랗게 눈을 뜨고는 그리는 못한단다. 직업에 대한 긍지가 있다. 한참이나 설교를 들어야 했다. 4,000원의 가치에 대해서,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그 만의 기술에 대해서….
끝이 없다. 그래, 좋다. 그런 정신이라면…. 장인이 따로 없다. 하여간에 구두닦이들이 사라지니 구두를 닦기 어려워서 내가 불편하다.
정장에는 어울리지만 대체로 구두는 딱딱하고 불편하다. 그래서 가볍게 다닐 요량(料量)으로 운동화를 사려는데 충격을 흡수하면 좋겠다 싶어 스펀지 같은 바닥에 보드라운 깔창을 넣어야지 했다.
그 생각을 못했다. 타이어처럼 바람을 넣은 신발. 바람이 들어 몰캉함이 느껴지는 신발이 있었다. 좋기는 하다. 그런데 가격(價格)을 보고 가격(加擊)을 당한 기분이다.
운동화가 구두보다 비씨다. 심지어 자동차 타이어보다 비싼 것이 있다. 아파서 걷지를 못한다면야 무얼 못하랴 싶지만 공짜로 숨 쉬는 공기를 좀 집어넣었다기로서니 이럴 수가 있나 싶어 망설이고 있다.
신발의 다른 부분은 그리 좋지 않아도 된다. 바닥에 바람이나 좀 넉넉하게 넣어다오. 바람 값은 어차피 못 받을 테고 바람 넣는 값은 바가지 씌우지 마시라오!
조기조(曺基祚 Kijo Cho), 경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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